"서예는 모든 예술의 집약… 내실 갖춘 미술관 선보이고 싶어"
고미술 수집가 고송석(67)씨
2018. 08.19. 14: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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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문자의 구조성을 기초로 형과 선으로 창조된 추상예술이다. 운율감을 느낄 수 있고 조형적으로 뛰어난 구조를 지니고 있어 모든 예술의 기본이자 미학의 완성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서예는 문자 회화의 한 장르로, 추구하는 바가 본질적으로 현대회화와 맥을 같이 한다. 동양적 조형미가 현대미술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서예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중국 문화권에서 서예는 모든 예술 장르 중 가장 고가를 이루고 있다. 독립된 예술로 서예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고 있는 까닭이다. 이에 반해 한국 미술에서는 서예가 저평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송석(67)씨는 서예가 가지는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인정하고 3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서예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글씨에는 모든 예술이 집약돼 있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과 우리나라 정체성, 야사 등 당시 역사·문화적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서예죠. 중국에서는 예술 장르중 가장 비싸게 사고 팔리는 것이 글씨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죠. 아마 문화가 발전할수록 서예의 중요성을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지난 11일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의 한 찻집에서 만난 고씨는 약간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평소 조용하고 점잖은 성품으로 알려져 있는 그다. 본보 기자를 만나기 전 고씨는 고향 담양에 들러 서예미술관 건립을 위한 상담을 받고 온 길이었다. 오랜시간동안 수집해 온 서예작품을 시민들을 위해 전시하는 것을 꿈꿔왔다. 이날은 그의 꿈이 현실에 한발 더 가까워 지는 날이었다.
"고향은 담양 창평이지만 광주에서 생활해 온 까닭에 광주에 미술관을 건립하고 싶었습니다. 이날을 위해 평생 모은 재산으로 작품을 사고, 미술관 건립을 꿈꿨는데 광주에서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광주는 땅값이 너무 올라 미술관 건립에 대부분의 투자금이 투입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고향에 미술관 건립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삼봉 정도전의 병풍에서부터 통일신라 시대의 김생 , 다산 정약용, 우암 송시열, 소치 허련, 추사 김정희, 소전 손재형 등 명현들의 필력이 담긴 작품은 물론 1590년께 식영정과 환벽당이 그려진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柳濯熱圖)에 이르기까지 그가 수집한 작품의 스케일은 어마어마 하다.
고씨는 특히 동국진체의 맥을 잇는 작품을 모두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동국진체 작품 최다 소유자로 알려질 정도다.
동국진체란 조선후기 중국의 서체를 모방하지 않고 진정한 우리의 글씨를 써보자는 문학운동으로 시작된 서체다. 옥동 이서(1622~1723)에서 시작돼 공재 윤두서(1668 ~1715), 백하 윤순(1680~1741),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완성했다. 이후 창암 이삼만(1770~1847), 석전 황욱(1898~1993), 설주 송운회(1874~1965), 호암 박문회, 송곡 안규동(1907~1987)으로 이어졌다.
"조선후기는 사대주의가 팽배했던 시기였습니다. 그와같은 시기에 호남을 중심으로 우리것을 만들어가기 위한 운동이 호남을 중심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죠. 호남이 한국의 예향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동국진체 중에서 그는 원교와 창암의 작품을 좋아한다. 특히 원교 이광사의 작품에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받아왔다. 미술작품을 어느정도 안다는 이도 글씨에서 감동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겸재 정선, 단원 이홍도의 작품보다 원교나 창암의 작품이 더 감동적이라는 고씨가 서예작품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금호타이어 연구실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였죠. 당시 내 업무 중 하나가 광주를 찾은 외국의 퇴역 기술자들을 통역하고 접대하는 일이었습니다. 대개 50대 후반 60대 초반의 뛰어난 기술자들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문화적 수준 또한 굉장히 뛰어났어요. 주말마다 미술관, 박물관을 둘러보자고 하는데 고미술품을 보고 유약의 색깔, 시대적 배경 등을 어찌나 구체적으로 물어보는지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습니다."
손님들의 질문에 만족할만한 답변을 하지 못할까봐 불안했던 것보다 우리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미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출간된 고미술 책을 거의 섭렵하고 나니 작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국화를 사고 싶었지만 당시 한국화는 엄청난 고가였던 탓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예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월급을 탈때마다 한두점씩 모아오다 1990년 퇴임하고서부터는 광주 동구 예술의거리에 무등고미술원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수집에 나섰다. 동강 정운면,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 현당 김한영 등의 작품도 간혹 사들였지만 대부분 동국진체 서예작품을 수집했다. 월급은 물론 선친이 남겨준 재산까지 처분해 작품을 수집하는 등 '마누라, 자식 빼고 다 팔아봤다'며 우스갯 소리를 던진 그가 30년동안 모은 작품은 서예작품만 1000여점이 넘는다.
고씨가 서예작품을 모으게 된 것은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닐 것이다. 조부가 한학자라는 사실은 그가 왜 서예에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됐으며, 글씨를 보는 안목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담양 창평에서 고씨는 고경명 선생의 14세손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어버지는 한학자 전우 선생의 제자다. 한학을 하신 할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웠다.
한자에 대한 이해와 글씨에 안목이 있는 그지만 반평생 이상을 재산을 탈탈 털어가며 서예작품 수집에 올인한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되면 좋겠어요. 산업화를 거쳤던 지난 60년간 우리나라가 천박해졌다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어요. 6·25가 끝나고 지어진 집 중에 정체성이 있는 집은 한채도 없어요. 철학이 없는거죠. 한국이 선진국 되는데 중요한건 문화입니다. 배금주의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돈보다 중요한게 문화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서하당 김성원 성산계류탁열도

다산 정약용 성산십도 중 일부분 경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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