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老 레슬러의 분투’
이용환 논설실장
입력 : 2025. 03. 13(목) 17:17
이용환 논설실장
1976년 8월 1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21회 하계올림픽에서 레슬러 양정모가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레슬링 자유형에 출전해 대한민국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양정모. 공교롭게도 이날은 꼭 40년 전인 1936년 8월 1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토너 손기정이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달고 애국가 대신 ‘기미가요’를 들어야 했던 날이었다. 그 만큼 그의 금메달은 한국인에게 감동이었고 자부심이었다. 그 해 연말 최고 뉴스가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과 신안 해저보물 인양 등을 제치고 양정모의 금메달이 차지할 정도였다.

“어찌 용서가 되겠느냐. 아프다.” 지난 2017년 7월 28일,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SNS에 글을 올렸다. 향년 55세로 별세한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원기에 대한 애도였다. 함평 출신으로 함평농고 1학년때 레슬링에 입문했던 김원기. 가난 때문에 레슬링을 선택했다는 그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거두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미인박명인 것일까. 몸은 강인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했던 그는 2017년 7월 27일 불의의 사고로 짧은 생을 마무리했다. 대한민국 레슬링의 영웅이면서 우상의 허무한 죽음. “그는 나를 형님이라 따랐지만, 못난 나는 형님 자격이 없었다.”는 게 이 전 국무총리의 회상이었다.

근대 스포츠가 들어온 이후 레슬링은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효자 종목이었다. 건국 후 양정모와 김원기의 금메달에 이어 우리나라는 올림픽 레슬링에서만 11개의 금메달을 비롯해 모두 35개의 메달을 따냈다. 88년 서울 올림픽까지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땄던 종목도 레슬링과 유도, 복싱, 양궁이 전부였다. 함평농고 김치수·김승민, 전남체고(현 광주체고) 배원호·김승영, 전남대 김원기 등 걸출한 스타도 많이 배출했다. 특히 한국체대를 거쳐 국가대표로 활약한 배원호는 80년대 국내·외 대회를 석권하며 수많은 ‘전설’을 썼다.

‘전설의 레슬러’ 배원호 씨가 광주레슬링협회장에 취임하면서 ‘레슬링의 부활’을 선언하고 나섰다. 1대 김선광 디에스팩 회장과 2대 김제안(전 광주동부교육장) 회장에 이어 3대 통합 회장으로 선배들의 못다 이룬 꿈을 잇겠다는 포부다. 반세기 가까이 레슬링과 함께 해온 배 회장은 현역시절 선배였던 故 김원기 선수와 체급은 달랐지만 경쟁자이면서 친구였고 동반자였다. 지금 그의 바람도 김원기가 생전 열망했던 ‘레슬링의 부활과 대중화’다. 힘과 힘이 맞붙는 레슬링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거쳐 중세까지 기사에게 필수 종목이었다. 반칙도 가식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과 기술, 정신력으로 승부하는 레슬링.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레슬링의 가치와 미래를 재정립 하겠다는 ‘老 레슬러의 분투’가 듬직하다. 이용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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