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대학 생존·안전한 공론장, 두 가치의 충돌
박소영 취재1부 기자
입력 : 2024. 11. 18(월) 17:56
박소영 취재1부 기자.
설립자 흉상에 뿌려진 오물, 본관 앞 벗어둔 수백 점의 학과 점퍼, 학교 곳곳 빨간 글씨의 대자보들. 동덕여대 학생들의 남녀공학 전환 반대를 위한 거센 반발의 흔적들이다.

동덕여대 내부 갈등은 교무회의에서 일부 교직원이 ‘남녀공학 전환 추진’을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학교 측은 학교 발전을 위한 의견일 뿐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은 여성 학습 공동체라는 의미를 포기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비민주적인 절차라며 반발하고 있다.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반대 시위는 성신여대, 광주여대 등 전국 여대들의 ‘여대 존치’에 대한 시위로 확산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남은 4년제 여자대학은 7곳이다. 이중 이화여대를 제외한 광주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숙명여대는 동덕여대 반대 시위에 함께하거나 연대 입장을 표명했다.

성신여대는 학교 측이 2025학년도 입시에서 국제학부에 한해 외국인 남성 학생 지원을 열어둔 점을 문제 삼고 시위를 벌였다. 사실상 남성입학을 허용했다는 입장이다. 광주여대도 최근 학교 측이 변경한 입학 모집 요강에 남성 유학생·성인학습자(만학도)를 받는다는 조항이 추가돼 재학생들의 반대 시위가 진행됐다.

이번 동덕여대의 내홍을 기점으로 ‘여대’라는 공간에 대한 찬반논쟁이 다시금 피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대 존속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강력한 가부장제 아래 배제된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여대가 현시대와는 더 이상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학령인구가 감소하며 남자 입학생을 모집하지 않는 여대의 경우, 장기적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시각이다.

반면 ‘N번방’, ‘딥페이크 범죄’ 등 성차별, 성범죄 등이 여전한 한국 사회에서 과거 여성의 교육권 보장이라는 설립 가치가 유효하다는 시각도 있다. 성별이 잣대가 되지 않아 물리적·심리적 안정 아래 학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의제를 연구하는 학문적 기반으로서 의미가 남아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대학의 생존 위기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대학은 학과 통폐합은 물론 비인기 학과 입학생을 더 이상 받지 않는 사실상 폐과 절차를 밟고 있기도 하다. 안 그래도 줄어들고 있는 학령 인구인데, 여성만 받는 여대의 경우 남녀공학보다 경영상 어려움을 모면할 자구책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여대는 안전한 공론장이다. 남녀공학 대학에서는 해마다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으며 지금 공학 반대를 외치는 동덕여대, 광주여대 등 여대에서조차 ‘동덕여대 알몸남’, ‘도서관 음란행위 적발’ 등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학생과 학교 측 모두 본인들만의 목소리만 낼 수 없는 답보 상태인 것이다. 대학의 생존과 안전한 공론장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가치 속 한국 여대들의 해법을 기대해 본다.
박소영 기자 soyeong.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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