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위주 입시 경쟁 틀 깨야 사교육 의존 탈피”
● ‘호남 사교육 1번지’ 봉선동 집중해부
교육전문가 제언
공교육, 학생 진로 선택 발판돼야
학교-사회 연계 강연·워크숍 필요
개인별 특성·재능 맞춤 교육 도입
입력 : 2024. 07. 08(월) 18:23
‘광주의 대치동’으로 불리는 봉선동 일대의 과도한 사교육 쏠림 현상이 학습권 침해·부동산 가격 상승·입시경쟁 과열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교육-사교육 균형이 무너져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선 규정된 입시 경쟁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학생이 개개인의 성향·관심사에 맞춰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안학교·청소년센터·학술기관 등 각자의 분야에서 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을 만나 공교육 강화 방안을 들어봤다.

한경아 잇다자유발도르프학교 대표교사
● “규정된 입시 틀 벗어나야”

한경아 잇다자유발도르프학교 대표교사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규정된 입시 경쟁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경아 교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데, 대한민국 교육에서는 ‘12년의 교육이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로 한정돼 있다”며 “학생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해진 입시 경쟁이 아닌 개개인의 성향과 관심사에 집중할 수 있는 대학 입학 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 교사는 2028년 대입부터 적용되는 고교 내신 등급제 개편도 사교육을 심화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내신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면서 오히려 고등학교 내에서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며 “5개의 등급으로 학생들을 선별하기 때문에 한 등급 안에서도 치열한 다툼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교육과정이 아닌 새롭게 시도해 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교육 커리큘럼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신을 통해 대학을 가는 수시 전형의 경우에도 결국은 대학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맞춰 생활기록부를 채우는 방식이라 ‘학생들의 다양함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한 교사는 또 대학 진학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은 사회적 통념을 없애고 공교육은 학생들이 미래를 고민하고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어느 계열의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 미리 정한 뒤 그에 맞춰 내신 관리를 하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한다”며 “등 떠밀려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어떤 내용을 더 배우고 싶은지를 알아본 후에 대학 진학을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성적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함께 모여 단체 생활을 하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라며 “대학 입시가 성적에만 집중된다면 사교육은 더욱 심화할할 수밖에 없다. 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공교육만의 특성을 살려 학생들이 미래를 그려보는 기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오상빈 광주동구청소년상담센터장.
● “인성·사회교육 강화 필요”

오상빈 광주동구청소년상담센터장은 일부 학교에서 강제로 시행되는 야간 자율학습 등과 같은 과중한 학습 부담을 줄이고 ‘학생 본인에게 맞는 학습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센터장은 “IT·생활 변화 등으로 교육 시스템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공교육 또한 이에 재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며 “예를 들면 사회·생활 기술·대화법 등 인성·기본 교육이 강화된 학업 과정이다. 이는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고 사회에서 자립하고 성공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자유학기제나 체험학습 등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학습이 교과 과정으로 인정돼야 한다고도 했다.

오 센터장은 “인턴십 경험이나 외부 교육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며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이론’을 전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적응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오 센터장은 ‘사교육은 없앨 수 없다’며 공교육의 강화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공교육에서는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책임감·배려심 등 사회적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며 “학교와 사회가 밀접하게 연결되는 환경도 큰 도움이 된다. 지역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학교에서 강연하거나 워크숍을 여는 등 사학 연계가 밀접하게 되면 사교육과 차별성을 둘 수 있다”고 했다.

교육 제도 정비로 교사들의 권익향상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센터장은 “공교육은 법적·제도적 한계로 인해 법 울타리가 없는 사교육에 비해 신속한 변화가 어렵다”며 “상담을 하다보면 교사들이 힘듦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전출·퇴직이 두려워 작은 훈계조차 못 하는 이들도 있다. 교사가 바뀌어야 학생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데, 현 실태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만족할 만한 ‘열린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혜자 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
● “학생 성장 기록 플랫폼 필요”

박혜자 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제19대 광주 서구갑 국회의원)은 현 줄 세우기 교육 실태를 비판하며, 공교육 강화를 위해 ‘사교육 없이도 꿈을 달성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전 원장은 “대한민국 1인당 교육비가 OECD 상위권인 연간 3000만 원이다. 사교육을 없앨 수 없다는 뜻”이라며 “공교육과 사교육이 공존하려면 결국 공교육 내에서 꿈을 키우고 성공까지 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활용 다양화 교육 △학생 성장 기록 플랫폼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박 전 원장은 “오는 2028년까지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정보화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 AI시대가 눈앞까지 온 것”이라며 “다양한 교육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획일화된 교육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특성·재능에 맞는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 특성화 학습과 그에 맞는 시험 방식 등이 강구된다면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히 꿈을 이룰 수 있다. 초·중·고 학년제 개편도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공교육의 특성을 살린 ‘학생 성장 기록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사교육 열풍에도 공교육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국가교육으로서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지 않나. 사교육은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지만, 공교육은 끝까지 국가가 뒷받침해 주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이어 “초·중·고 학창 시절 동안 자신과 교사 등이 쓰는 ‘성장 기록’ 포맷을 도입하면 어떨까 싶다”며 “일찍이 성적에 따라 자신의 꿈을 정하는 게 아닌 성장하는 과정에서 꿈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잘했는지’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공교육만이 할 수 있다. ‘공교육 정상화’의 포인트는 결국 획일화된 이론이 아니라, 정해진 교육 환경 내에서 얼마나, 어떻게, 다양한 학습을 하게 할 수 있느냐다”고 말했다.
정성현·정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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