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반려동물 급증하는데 장묘시설 없어 ‘원정 장례’
전남 민간업체 4곳·광주는 전무
타지역 장거리 이동에 불편 호소
동물사체 불법 투기·매립 부추겨
광주시 "시설 마련 추가 용역 중"
입력 : 2024. 05. 29(수) 18:32
“가족인데 쓰레기봉투에 버릴 순 없잖아요. 제대로 장례를 치러주고 싶은데 그마저도 쉽지 않네요.”

광주 북구에 거주하는 임모(28)씨는 지난 1월 3년간 함께했던 강아지 ‘행복’이를 떠나보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슬픈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급하게 반려동물 장묘시설을 찾아 나섰지만, 당장 광주에 화장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애를 먹었다. 그나마 가까운 전남지역 민간 시설에 문의했지만, 예약이 꽉 차 다음날이 되고 나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광주지역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매년 증가하면서 ‘반려동물 장묘시설’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법 유기와 매립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지만, 정작 광주지역에 반려동물을 위한 장례시설은 한 곳도 없다. 광주 시민들은 반려동물 사후처리를 위해 전남이나 타지역으로 ‘원정 장례’를 떠나야 하는 실정이다.

29일 광주시 등에 따르면 광주지역 반려동물 누적 등록 건수는 2019년 4만여 마리에서 지난해 기준 8만여 마리로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려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행정 당국은 반려동물 치료비, 펫보험료 등을 지원하는 등의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려동물 양육과 관련된 지원이 늘었음에도 반려인들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광주에는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당장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시설이 없어서다.

이 때문에 대다수 반려인들은 전남이나 다른 지역으로 원정 장례를 가는 불편을 감수하거나 키우던 반려동물 사체를 불법으로 야산에 투기, 매립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2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동물이 죽은 경험을 한 광주지역 응답자 중 65.5%가 반려동물 사체를 직접 땅에 묻었고 8.6%가 동물 장묘업체를 이용했으며, 5.2%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했다고 답했다.

현행법상 반려동물 사체는 폐기물로 분류돼 동물병원에 맡겨 의료폐기물로 처리하거나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해야 하지만,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상당수의 반려인이 반려동물을 ‘쓰레기’와 같은 폐기물로 분류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광주 남구는 지난 23일 자치구 최초로 반려동물 장례비 지원 등에 나섰다. 남구에 거주하는 반려인은 여수의 민간 반려동물 장례시설을 이용하면 장례비 할인과 봉안당 무료 안치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남구 관계자는 “반려인의 동물화장 민원을 해소하고, 성숙한 반려 문화 조성을 위해 여수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인 푸른솔과 최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어렵게 마련된 지원책이지만 남구에서 약 100㎞ 떨어진 해당 업체에 직접 방문해야 혜택이 적용돼 이용에 불편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광주에 반려동물 장묘시설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추진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광산구에서 지난 2022년 한 민간 업체가 동물 화장터를 마련하고자 토지 용도 변경을 신청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수년째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남의 경우 여수와 함평, 순천, 목포에 민간이 운영하는 동물 장묘업체 4곳이 있다. 해당 업체에서는 하루에 4~6건 정도의 반려동물 장례를 치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기정 광주시장의 민선 8기 공약 중 하나인 ‘반려동물복지지원시설’은 화장장과 놀이터, 입양센터를 포함하고 있는 복합 시설로, 올해 3월로 타당성 연구용역이 마무리될 방침이었으나 이달 말까지 추가 용역에 들어가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연구용역이 마무리되면 올해 내로 기본계획을 세우고 서둘러 반려동물 복지 시설 마련을 추진할 예정이다”며 “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공설기관과 협약을 통해 반려동물 장묘시설 이용 지원을 계획 중이다”고 말했다.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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