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에 동의서?… 산수동 가로주택사업 논란
동의율 높이려 시행사 대필 동의
가족 “반대 위원장까지 맡았는데
동의사인했다는 건 말도 안돼”
동구 “법적 하자없어 인가 진행”
가족 “반대 위원장까지 맡았는데
동의사인했다는 건 말도 안돼”
동구 “법적 하자없어 인가 진행”
입력 : 2023. 11. 20(월) 17:28

마을 주민들이 광주 동구 산수동 553-24 일대에 추진 중인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에 대해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아버지가 가로주택 반대추진위원회 대책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치매 증상까지 있었는데 동의서에 사인 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 17일 광주 동구 산수동 한 카페에서 만난 A(58)씨는 ‘조합설립 동의서’와 낙서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번갈아 가르키며 분통을 터트렸다.
A씨가 보여준 동의서에는 동구 산수동 일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에 A씨의 아버지 B씨가 사업에 동의한다는 서명이 적혀 있었다. 다른 한 장에는 B씨 수첩 일부분으로 집과 자녀들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두 장에 적힌 글씨는 한눈에 봐도 각각 다른 글씨체다.
A씨는 “아버지가 2년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었다. 증상이 심해져 1시간 전 일도 기억 못할 때가 많다”며 “그런 분이 40년간 살던 집을 팔고 나가겠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아버지는 기억도 못했다. 결국 이 일이 화근이 돼 지난 8월 돌아가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광주 동구는 최근 산수동 553-24 일원에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조합) 사업의 조합설립을 인가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란 기존 주거지의 기반 시설, 가로망은 유지하면서 빈집이나 노후 주택을 허물고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소규모 주택 정비사업이다. 이번 사업은 지하 2층~지상 27층 높이 아파트 196가구를 조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합을 설립하려면 토지 소유자 등 80% 이상, 토지 면적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데 조합 측은 80.2%의 동의를 확보했다.
하지만 A씨는 조합설립 인가 과정에서 B씨의 치매 증상이 발현됐을 때 시행사 측에서 위법하게 동의서를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당시 시행사 측이 대필로 동의서를 작성했는데 현행법상 대필 동의서 작성이 무효라는 이유에서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 따르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대한 동의(동의한 사항의 철회를 포함한다)는 서면동의서에 토지등소유자가 성명을 적고 지장(指章)을 날인하는 방법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
B씨가 동의서를 작성한 지난해 11월은 B씨가 치매를 앓고 있을 때였다. B씨는 치매환자로 2년전 병원에서 중증치매인 피질하 혈관성 치매(F2) 진단을 받았다. F2는 알츠하이머병과 비슷하며 발현하면 주로 인지기능과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씨 등 B씨 자녀들은 지난해 11월 조합측에 동의서를 냈다는 이야기를 이웃들에게 전해듣고 조합 탈퇴를 위해 구청에 ‘동의 철회 요구서’와 ‘치매진단서’를 내용증명으로 제출했다.
A씨는 “내용증명 제출 당시에는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들었다”며 “하지만 아버지가 조합을 탈퇴하면 가입률이 80%가 안돼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 입장을 바꿨다”고 했다.
이어 “구청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정해진 법적 테두리 안에서 구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되는 것 아닌가”라며 “지금 집에는 90세 어머니와 50대 막내 동생도 살고 있다. 어머니는 고관절이 다쳐 걷지도 못한다. 주택사업이 시작되면 이사해야 되는데 막막할 노릇”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광주시 동구측은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구청 소속 자문변호사 2명과 전문 변호사 1명의 자문을 구해 의견서와 판례를 받아 판단했다”며 “당시 변호사들에게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의사 능력을 부정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매환자가 되면 피성년후견인 등을 지정하는 행정절차가 있는데 이걸 이행하지 않았다는 내용 등이 있었다”며 “위법하게 진행된 절차가 아니라면 구청은 인가해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
지난 17일 광주 동구 산수동 한 카페에서 만난 A(58)씨는 ‘조합설립 동의서’와 낙서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번갈아 가르키며 분통을 터트렸다.
A씨가 보여준 동의서에는 동구 산수동 일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에 A씨의 아버지 B씨가 사업에 동의한다는 서명이 적혀 있었다. 다른 한 장에는 B씨 수첩 일부분으로 집과 자녀들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두 장에 적힌 글씨는 한눈에 봐도 각각 다른 글씨체다.
A씨는 “아버지가 2년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었다. 증상이 심해져 1시간 전 일도 기억 못할 때가 많다”며 “그런 분이 40년간 살던 집을 팔고 나가겠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아버지는 기억도 못했다. 결국 이 일이 화근이 돼 지난 8월 돌아가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광주 동구는 최근 산수동 553-24 일원에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조합) 사업의 조합설립을 인가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란 기존 주거지의 기반 시설, 가로망은 유지하면서 빈집이나 노후 주택을 허물고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소규모 주택 정비사업이다. 이번 사업은 지하 2층~지상 27층 높이 아파트 196가구를 조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합을 설립하려면 토지 소유자 등 80% 이상, 토지 면적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데 조합 측은 80.2%의 동의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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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설립 동의서’(왼쪽)와 B씨의 메모가 적힌 종이(오른쪽). 두 장에 적힌 글씨체가 각각 다르다. |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 따르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대한 동의(동의한 사항의 철회를 포함한다)는 서면동의서에 토지등소유자가 성명을 적고 지장(指章)을 날인하는 방법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
B씨가 동의서를 작성한 지난해 11월은 B씨가 치매를 앓고 있을 때였다. B씨는 치매환자로 2년전 병원에서 중증치매인 피질하 혈관성 치매(F2) 진단을 받았다. F2는 알츠하이머병과 비슷하며 발현하면 주로 인지기능과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씨 등 B씨 자녀들은 지난해 11월 조합측에 동의서를 냈다는 이야기를 이웃들에게 전해듣고 조합 탈퇴를 위해 구청에 ‘동의 철회 요구서’와 ‘치매진단서’를 내용증명으로 제출했다.
A씨는 “내용증명 제출 당시에는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들었다”며 “하지만 아버지가 조합을 탈퇴하면 가입률이 80%가 안돼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 입장을 바꿨다”고 했다.
이어 “구청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정해진 법적 테두리 안에서 구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되는 것 아닌가”라며 “지금 집에는 90세 어머니와 50대 막내 동생도 살고 있다. 어머니는 고관절이 다쳐 걷지도 못한다. 주택사업이 시작되면 이사해야 되는데 막막할 노릇”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광주시 동구측은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구청 소속 자문변호사 2명과 전문 변호사 1명의 자문을 구해 의견서와 판례를 받아 판단했다”며 “당시 변호사들에게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의사 능력을 부정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매환자가 되면 피성년후견인 등을 지정하는 행정절차가 있는데 이걸 이행하지 않았다는 내용 등이 있었다”며 “위법하게 진행된 절차가 아니라면 구청은 인가해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