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옥연의 문향, 가다가 멈추는 곳〉장성 봉암서원

백옥연의 문향, 가다가 멈추는 곳〉장성 봉암서원_망암 변이중

‘화차’로 행주대첩 승리 이끈 조선의 ‘선비 과학자’ ||동시다발이 가능한 ‘변이중 화차’ 400년만의 화려한 부활

입력 : 2020. 05. 28(목)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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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중 화차'. 망암 변이중(1546~1611) 서거 400주년을 맞아 봉암서원(이사장 변온섭)이 전라남도_장성군과 함께 복원한 화차가 2011년 11월 장성 육군 포병학교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쾅~쾅~쾅~' 화차(火車)가 불을 뿜는다. 치우천왕이 그려진 조선시대의 화차가 불을 뿜는다. 길이는 가로·세로 각 2m에 소 두 마리 무게인 800kg, 총통구가 40개가 장착돼 있는 화차. 왜적을 물리쳤던 조선의 병기가 420년의 시간을 넘어 21세기에 화려하게 부활을 하는 순간이다. '변이중 화차'. 망암 변이중(1546~1611) 서거 400주년을 맞아 봉암서원(이사장 변온섭)이 전라남도・장성군과 함께 복원한 화차가 2011년 11월 장성 육군 포병학교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차는 화약의 힘으로 화살을 다발 발사하거나 포탄을 멀리 쏠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한 수레다. 승자총통이 앞면에 14개, 좌우에 각 13개씩 총 40개가 장착돼 전면과 측면에서 발사가 가능하다. 총통 1정에서 15개의 철환이 발사되니 한 번에 600발의 동시발사가 가능한 것이다. 또 적의 조총공격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각형의 방호벽도 갖추고 있다. '승자총통'이라는 개인화기가 '변이중 화차'에 장착됨으로써 공용화기가 되었다. 복원된 화차는 150m를 날아가 목표물을 정확히 명중시켰으며, 주위를 쑥밭으로 만들만큼 그 위력도 대단했다.

1592년 왜군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부산진을 통해 조선을 침략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신무기 '조총'을 앞세워 질풍노도처럼 한양을 향해 진격했다. 개전 20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고 무능한 조선의 왕 선조는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길에 오른다. 연일 수많은 전투에서 밀리고 패배하다가 왜군에 맞서 승리한 전투가 한산대첩, 진주대첩 그리고 행주대첩이다. 전투에 신무기도 등장했다. 이순신의 한산대첩에 나대용이 만든 거북선이 등장하고, 화포장 이장손이 만든 비격진천뢰도 경주성 탈환에 진가를 발휘했다. 조선군 2천3백 명으로 3만 명의 왜군을 물리친 행주대첩에는 망암이 권율에게 보내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한 비밀병기 '변이중 화차'가 있었다.

그를 만나러 장성 봉암서원에 가는 길이다. 서삼면에서 흘러온 개천과 동남쪽을 흐르는 황룡강이 마을을 감싸 안은 것처럼 합류하고 강 안쪽으로 비옥한 제촌 앞들이 펼쳐져 있다. 장안마을회관에서 화차 길을 따라 들어가면 변이중의 종제인 변윤중과 그의 아내 함풍성씨, 며느리 장성서씨의 삼강정려가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왼편으로 화차와 병장기들이 전시된 시징당이 있다. 그 앞이 봉암서원이다. 서원에는 조선중기 문신으로 군사전략에도 밝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망암을 주벽으로 자하 변경윤, 정유재란 때 입암산성에서 순절한 윤진장군, 청류당 변휴, 휴암 변윤중, 망산 변덕윤, 묵포 변치명을 추가 배향해 왔다 .

망암은 '문불여(文不如) 장성'에서 태어났다. 자는 언시, 호는 망암, 본관은 황주이다. 청계 박원순, 성혼,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율곡을 찾아 배움을 청할 때 몇마디 말을 주고 받은 율곡은 극구 칭찬하면서 '요즈음, 망암을 따를 만한 선비가 없겠다."고 했다. 23세에 사마시에 합격, 28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관직으로 나갔다. 호조, 예조좌랑, 황해도 도사, 형조좌랑, 풍기・함안군수, 종부시정 등을 역임했다. 망암이 풍기 군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송사를 일으킨 사람이 권세가와 결탁하여 수십 년 동안 판결하지 못하고 있던 일이 있었다. 망암이 부임하던 날 바로 법에 따라 결정을 내려버렸다. 그곳 관찰사가 수차례 부탁을 했지만 끝까지 정실에 휩쓸리지 않고 법을 관철시켰다는 일화가 전한다. '망암은 성품이 강개하여 사람의 허물을 용납하지 않았다. 소모사가 되어서는 사람을 권면하되 반드시 충의로써 했다. 두려워하여 물러서려는 자가 있으면 단호히 처리하고 용서하지 않았고 한다. 이런 성품 때문에 많은 시기를 받았으며, 여러 번 탄핵의 위기를 맞았으나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이정귀가 쓴 변이중의 묘갈명에 전한다. 망암은 율곡을 계승한 기호학의 정통으로 조선 중기 성리학을 경세적 실천으로 전환한 후기 실학과 가교 역할을 한 성리학자이다. 예론에도 밝은 예학자로서 유능한 전략가이기도 했다. 1584년 율곡 타계 후 그의 가족들이 곤궁에 시달리자 이를 돌봐주었다가 반대파 동인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어 낙향했다. 향리의 부로들과 장성향헌 10개조(후에 20개조로 바꿈)를 만들어 향풍순화를 위해 노력한 경세가이기도 하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어천찰방으로 있었으며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200필의 말을 마련해 선조의 파천을 도왔다. 선조에게 세 차례에 걸쳐 임진왜란 평정의 계책을 상소하였다. 상소문을 보면 변이중은 왜란을 당하여 문관을 넘어 무신의 정신으로 급박한 상황에 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조를 호종하던 변이중은 1592년 10월 윤두수의 계청에 의해 전라도 소모사로 임명되어 충청・전라 양도에 파견되어 근왕병을 모았다. 망암은 12월 모집한 군사를 이끌고 근왕을 위해 북상하는 길에 죽산 전투에서 적을 토벌하다 크게 패하였다. 소모사 1번, 조도사 2번, 독운사를 3번 역임하면서 전란 수습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전라도에 소모사로 내려와 있던 4개월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300량의 화차를 제작해 이중 40량을 행주산성의 권율장군에게 보냈다. 화차 제작은 근처 장자마을에 살던 사촌 동생 변윤중의 막대한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문종화차를 개량해 신기전이나 사전총통 대신 승자총통을 장착해 화력과 살상력을 높이고 군사를 보호하기 위한 방호벽을 설치한 것이 변이중 화차의 특징이다. 또 문종화차는 한 방향으로만 발사 할 수 있는데 비해 전면과 좌·우 3면에 승자총통을 장착한 것도 실전에서 승리를 거두게 한 중요한 요인이다. 그가 '총통화전도설'과 '화차도설'에 의거, 화차를 제조한 공로는 우리나라 과학사에 있어서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된다.

망암은 7년간의 극난극복에 많은 공을 세우고 여러 관직을 수행하며 선조 38년(1605) 60세 되던 6월에 함안 군수를 끝으로 고향에 돌아와 고향의 선비들과 후생들에게 경전이나 의리를 강론하면서 후진을 육성했다. 같은 해 나라에서는 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선생의 공을 기리어 호성일등과 선무이등의 공신에 책봉하였다. 망암은 광해군 3년(1611) 3월3일에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당시 성리학의 풍토에서 과감하게 국가위기에 대비하는 실용학문으로 전환하고, 신무기를 개발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점 등은 이론유학에서 실천유학으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학문에서의 과학의 중요성을 보여준 것으로 훗날 실학이 꽃피게 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문신이라 하더라도 국가위기의 급박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의 전범을 나타내주고 있기도 하다.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변이중 화차가 420년 만에 부활한 것은 봉암서원 변온섭이사장의 노력과 전라남도・장성군의 의지가 결실을 맺은 것으로, 현재 임진왜란과 관련한 교육의 장으로서도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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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전투 비밀병기는 '변이중 화차'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행주산성 대첩 기념관에는 '문종화차'가 전시되어 있다. 1978년 행주산성을 방문한 박정희 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복원된 것이다. 당시 채연석 박사는 <망암집>에 수록된 <총통화전도설>과 <화차도설>에 소개되고 있는 화약무기들을 대부분 복원하였다. 하지만 변이중 화차가 승자총통 40개를 장착한 화차였음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망암집>의 잡설에 그려진 문종화차를 근거로 복원함으로써 행주산성 전투의 승리가 신기전 덕분이었다는 오해의 발단이 되었다. 또 '행주산성 대첩도'나 행주공원 안의 충장공 권율장군 동상 뒤의 행주대첩 당시 항전을 묘사한 부조묘에는 변이중의 화차가 아닌 문종화차가 묘사되어 있다.

변이중이 남긴 글을 모은 <망암집>의 <화차도설>에서도 문종화차를 소개하고 있으나 이는 <국조오례서례>, <병기도설> 내용과 거의 동일하고 <망암집> <총통화전설> <화차도설>에 소개된 무기들이 기존의 조선 화약병기를 총망라하는 성격의 소개 글에 불과하다. 임진왜란 당시 변이중 화차는 <망암집>의 <화차도설>에 소개된 문종화차가 아니라 마지막에 첨부된 <화차도>이다. <증보문헌비고>, <연려실기술>, <홍재전서>, 윤광계와 강항이 지은 망암 변이중의 묘비명, <임하필기>제18권 등에서 변이중 화차가 40개의 승자총통을 장착한 형태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미 많은 문헌에서 행주산성 전투화차가 문종화차가 아니라 이를 개량한 변이중 화차임을 언급되었는데도 일부 방송과 언론, 군사전문가들의 토론회 등에서 오류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화차와 관련한 학술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다. 봉암서원의 전시관 시징당에는 <망암집>에 나오는 다양한 무기들과 2011년 복원, 시연된 '변이중 화차'가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