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손배 첫 판결…지역사회 “책임 묻는 첫걸음”
법원 “尹, 1인당 10만원 배상하라”
‘5·18 트라우마’ 정신적 피해 인정
정치권 “시민이 만든 역사적 승리”
오월단체 “재발 방지 제도 보완을”
입력 : 2025. 07. 27(일) 17:42
윤석열 전 대통령. 연합뉴스
“우리는 그날의 공포를 잊지 못합니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25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조치에 대해 정신적 손해를 인정하고 104명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국가의 위헌적 조치에 대한 첫 손배 판결이다. 광주·전남 지역사회는 “책임을 묻는 첫걸음”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번 판결은 국가 최고 권력자의 불법적 계엄 조치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법원이 공식 인정한 사례다. 위자료 액수와 무관하게 국가의 위헌 행위에 민사적 책임을 처음 명시한 판례로서 법적·사회적 의미가 크다.

이성복 서울중앙지법 민사2단독 부장판사는 “피고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할 의무를 저버리고 국회를 마비시키는 위헌적 조치를 강행했다”며 “이로 인해 시민들이 공포·좌절·수치심 등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이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지난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당시 대법원은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위헌 행위는 개별 불법 여부와 무관하게 전체적으로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 소송은 지난해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시민들이 제기한 집단 손해배상 청구에서 비롯됐다. 원고 측은 “경찰의 강제 해산·체포·사복경찰의 미행 등으로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이는 명백한 국가폭력”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광주여성변호사회도 국민 23명을 원고로 같은 내용의 소송을 광주지법에 제기한 상태다.

지역사회는 법원의 판단을 환영하며 추가 소송 가능성도 언급했다.

양재혁 5·18 유족회장은 “광주에서 계엄령이란 단어는 가슴을 덜컥하게 만드는 말이다. 대통령의 위헌 조치에 대해 법원이 정신적 피해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이 판결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며 “10만원은 상징에 불과하지만 국가폭력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판결이다. 반복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도 “전 국민이 받은 충격에 비해 10만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지역민들은 ‘우리는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할 정도로 상처가 깊다. 이번 판결이 제2·3의 손배소로 이어져야 한다. 국가폭력의 역사를 끝내기 위한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내린 지난 4월 4일 광주시민들이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 등에서 전남일보 호외를 받아보고 있다. 김양배 기자
청년 세대도 국가 책임 인정에 환영의 뜻을 보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직전까지 5·18민주광장 집회에 꾸준히 참여한 김세원(26)씨는 “많은 시민이 시간과 비용을 감수하며 거리로 나섰다”며 “이번 판결로 ‘공포조차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이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광군민 이모(60)씨는 “계엄령 뉴스를 들었을 때 80년 5월이 떠올라 ‘우리는 아직도 그 시절에 사는구나’라는 좌절감을 느꼈다”며 “법원 판결을 통해 누가 잘못했는지 명확해져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정치권의 반응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26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윤석열의 불법 계엄과 내란은 국민의 정신적 피해를 넘어 민주주의와 국격, 경제를 파괴한 중대 범죄”라며 “이번 판결은 시민이 만든 역사적 승리이자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단죄”라고 밝혔다.

채은지 광주시의회 부의장은 “비상계엄은 단순한 위헌 조치가 아니라 시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고통을 준 국가폭력”이라며 “이번 판결은 공포조차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기준을 세운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시민들이 집회에 참여하고 법정에 함께 선 것은 공동체의 용기와 연대의 힘을 보여준 것”이라며 “향후 유사한 국가폭력에 대해 시민들이 함께 법의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법률 전문가들도 이번 판결의 의미에 주목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상급심에서 확정된다면 향후 유사 사건의 판단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12·3 비상계엄은 명백한 위헌·위법 행위다. 과거 전두환·노태우의 경우와는 달리, 이번엔 보다 적극적인 책임 추궁과 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정치일반 최신뉴스더보기

실시간뉴스

많이 본 뉴스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