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에 허위 자백 42년 만에 무죄…재판장 "선배 법관 대신 사과"
서울고법, 1983년 국가보안법 유죄 판결 뒤집어
입력 : 2025. 05. 21(수) 18:05
1980년대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불법 구금과 고문을 당한 끝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60대 남성이 4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4-2부(권혁중 부장판사)는 21일 김동현 씨에게 내려졌던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유죄 판결을 취소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1982년 4월, 자신이 발표한 시집이 문제가 될까 염려해 스웨덴으로 출국, 망명을 시도했다가 같은 해 5월 귀국한 직후 안기부 수사관에게 연행됐다. 이후 약 40일간 영장 없이 불법 구금된 채 고문을 당하며 자백을 강요받았다.

1심은 그해 11월 징역 10년을 선고했고, 2심에서는 형량이 징역 5년으로 줄었지만, 1983년 7월 대법원이 이를 그대로 확정하면서 김씨는 실형을 살았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 앞서 김씨에게 공식 사과의 뜻을 밝혔다. 권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고문과 불법 구금 속에서도 법원이 희망의 마지막 보루가 돼 줄 것을 기대했겠지만, 그 기대는 끝내 외면당했다”며 “선배 법관들이 피고인의 호소를 외면한 데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어 “그간의 판결문과 기록을 검토하며 피고인의 항소이유서, 상고이유서 속 절규와 절박함을 읽었다”며 “당시 법원이 고문에 의한 자백을 문제삼지 못한 것은 용기 없음이요, 계엄의 위헌성을 외면한 것은 소신 없음”이라고 했다.

재심 개시는 2023년 9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김씨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권고한 데 따라 이루어졌다.

재판부는 이날 무죄를 선고하며 “피고인이 조사 과정에서 자살을 시도할 만큼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었고,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노병하 기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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