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강수훈>훌륭한 기자를 잃었다
강수훈 광주시의원
입력 : 2025. 01. 02(목) 18:05
“안녕하세요. 의원님, 저 KBS 보도국 기자 A입니다. 오며 가며 인사드렸는데, 이렇게 전화로 통화하는 건 처음이네요. 혹시 노점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의원님께 인터뷰를 요청드리고 싶어서요” 목소리는 활기찼고, 계속되는 질문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관련해서 몇가지 질문이 오갔고, 생각나는 대로 답변을 하긴 했지만 조금 뜬금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의정활동 중에 노점상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거나 관련된 질의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물었다. “저 말고도 인터뷰에 응해주실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왜 저한테 전화를 주셨나요?” 그는 “단순히 일회성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 싶다면서 함께 공부하며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 갈 사람을 물색하다가 연락했다”고 밝혔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기대도 있었지만, 정작 영상 인터뷰 날짜를 정하고 전화를 끊을 때에는 부담이 더 크게 다가왔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 그의 세평을 많이 들어왔다. 5·18 민주항쟁과 관련한 증언을 2년동안 영상으로 기록했고, KBS 연중기획보도 ‘영상채록 5·18’로 5·18언론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을 주최한 5·18기념재단은 “5·18진실규명운동 과정에서 5·18의 구술기록이 현재 5·18의 진실규명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된 것처럼 5·18 아카이브 자료로 평가한다”고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광주·전남기자협회 5·18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 검토단에도 참여를 했다. 그는 꾸준함과 진정성을 겸비한 기자였다.

그 외에도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포르말린의 위험을 보도한 ‘백혈병 양식장 노동자 포르말린의 위협’으로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상하는 등 사회의 부조리를 밝히고,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을만큼 용기있고, 진실된 기자였다. 올해 4월,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진행한 기획 보도 “멈춰버린 엄마의 시간” “세월호를 마주본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인터뷰에서는 특유의 감수성이 돋보였다. 2년 전 이태원 참사 때에는 “딸 휴대폰 열어보니, 억장 무너지는 유족”을 보도하며, “어이없는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는가, 묻고 답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유족들은 온전한 슬픔의 시간마저 빼앗기고 있습니다”라고 리포팅을 마쳤다. 뛰어난 공감능력으로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시대를 이야기하는 참기자였다.

그의 서사를 알고 있었기에 기대 반, 부담 반으로 인터뷰에 참여했다. 인터뷰를 하기 전 날,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며 각종 기사와 자료를 미리 보내줬다. 스터디 조장이 사전에 학습할 내용을 미리 제공하는 것 같았다. 2주 전, 시의회 의원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뒤 받은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역시는 역시’였다. 내 생각을 더 깊게 탐구할 수 있도록 질문을 이어갔고, 지역 공동체를 위해 올바른 답을 함께 찾길 바라는 간절함도 느껴졌다. 그로부터 이틀 뒤, 해당 인터뷰는 “사라지는 붕어빵, 노점허가제 논의를”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었다. 뉴스가 나갔다는 소식과 함께 관련 조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문자로 보내줄 만큼 섬세함도 갖춘 기자였다.

그런데 그 리포트를 끝으로 그의 보도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지난 12월 29일, 여객기 추락사고 희생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이주노동자 등 소외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시사교양 PD였던 남편의 이름과 함께였다.

산 자로서의 책임감으로 그가 유언처럼 남긴 노점허가제에 대해 깊게 고민할 생각이다. 문득 그의 SNS를 살펴봤다. 수년 전, 누군가의 말을 이렇게 인용한 적이 있었다. “세상엔 자신의 유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싸움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싸움의 지속은 타인의 유서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정치하는 내게 그가 보내줬던 마지막 문자 메시지는 그렇게 유서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훌륭한 기자를 잃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이여, 부디 좋은 곳에 가시길. 모든 고통을 잊고 자유롭고 평온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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