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바뀐 여행
전 완도중 교장
입력 : 2024. 10. 15(화) 17:29
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배움의 정원(庭園)을 배움의 후원(後園)이라고 글 칸 이름을 바꾸었다. 뒤로 물러서서,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 더 편한 자세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그러나 인생은 학문과 수양을 통해 완성이 될 터, 배움을 놓지 않을 요량이다. 정원에는 학교 교육 관련 사람들이 오고가며 글 손님으로 찾아왔었다. 후원에서는 다양한 주변 이웃들과 자연 속의 생물들이 자주 찾아와 줄 것이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났으니, 인생 전체가 이젠 나의 울타리가 될 것이다.

지난 추석 긴 휴일동안 강진을 갔었다. 요즘 반값 여행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강진은 젊은이들에게 핫플레이스인 모양이다. 30대 큰아들 내외랑 생애 첫 글램핑을 하였다. 내가 한다고 한 것 아니다. 그들이 먼저 그러자고 한 것이라 좋다고 따라 나선 길이 여러 가지 감회가 남달랐다. 마지막 학교가 있는 완도 가는 길목이라 익숙한 도로였지만, 사뭇 다른 길이었다. 첫 번째, 나의 자리가 운전석에서 뒷좌석으로 옮겨진 것이다. 두 번째, 운전하면서 보지 못한 차창 밖 풍경이 있었다. 벼들이 알곡을 내밀어 고개를 숙인 들판이 초록의 다채로운 채도와 명암을 선보이고 있었다. 다랭이 논들이 나도 있었지롱~~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젠 퇴직을 하고 쓸쓸해 할 부모를 위한 효도여행길이라는 것이 또 다른 결의 체험이었다. 어느새, 나는 이렇게 나이가 들어 저렇게 의젓하게 여행의 일정과 경비를 감당해 내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는가?

25년 전, 동해안 일주 가족여행길이 겹쳐 보였다. 조그마한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조잘조잘 웃고 떠들어 대며, 이가 아프도록 울릉도 오징어 씹던 그 꼬맹이들은 어디 있는가? 나의 추억 속의 서랍에 흐릿한 사진으로 아스라이 남아 있을 뿐인가?

부산 찍고, 포항을 거쳐, 울산과 경주를 올라가는 동해안 길에서 만난 공기는 짭짤하였다. 경상도는 역시 공기부터 다르다고 웃었다. 오른쪽 창문 밖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따라오던 바다의 내음은 아직도 코끝에 남아있다. 신나게 떠들다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저녁 늦게 영덕 만 바닷가 맛 집을 찾아갔다. 마치 막 잡아 온 듯 쫄깃한 감칠맛으로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던 그것은 영덕 대게였다. 우리는 그때 비싼 비용이 아깝지 않은 천상의 요리가 있음을 서로의 눈빛과 표정으로 비로소 확인했다. 우리는 첫 동해안 여행길이 제공한 맛의 세계를 정복한 장군들처럼 의기양양하였고, 서로를 바라보고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그땐 그랬다. 내가 30대일 때 여행이란, 내 식구들이 함께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신기하고 즐거운 향내와 맛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감만족이라는 표현이 바로 우리의 것이었다. 길 안내를 잘 해주는 친절한 목소리의 네비 아가씨가 그 때는 없었다.ㄴ 인터넷 찾아가며, 종이 지도도 짚어가며, 요리저리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안동하회마을 이장님 집을 찾아갔었다. 구들장 따뜻한 온돌방에서 이불 깔고 곤한 몸 뉘여 함께 자고 일어났던 그 다음날 아침, 이장님이 베풀어주신 환대를 잊지 못한다. 막 자라는 아들들은 아침을 굶으면 안 된다 하시며 밥을 먹고 가라 하셨다. 막 지은 쌀밥에 정갈한 나물 반찬의 집 밥을 우리는 또 얼마나 게걸스럽게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IMF 경기침체기로 남편의 직장은 불안했고, 가진 것은 없고 오직 젊고 건강한 것으로 버티던 날들이었다. 엄마가 학교가지 말고, 저희들 돌봐주면 안되냐며 볼멘소리 늘어놓는 동생을 꿀밤 줘 가며 그러면 안 된다고 핀잔을 주던 어린 형이 지금의 저 큰아들이다. 겨우 두 살 많았을 뿐이었다. 무엇을 도대체 알았던 것일까?

약간 부족한 것이, 약간 가난한 것이 오히려 우리를 겸손하게 했고, 더 부지런하게 했으며, 더 돕고 이해하게 했는지 모른다. 서로 양보했고, 때로는 원치 않던 양보가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서운함이 극에 달하여 서로 싸우기도 했었지만, 등 돌리고 잠을 청한 적은 없었다.

이젠 그 거친 풍파 다 이겨내고 풍족하고 넉넉하건만, 돌아보니 그 때의 행복을 다시 찾을 길이 없을 것만 같다. 그렇게 꿀맛이라, 조금만 더 누렸으면 아쉬워하던 휴식 시간이 이렇게 벼락처럼 다가왔건만, 어째 이렇게 명쾌하게 즐겁거나 행복한 느낌이 아닌 지 잘 모르겠다. 나는 다시 인생의 2막이라고들 하는 세상에 막 나와서, 또 다시 아마추어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인생 2막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엉거주춤.

후배 선생님들로부터 퇴임 후 더 건강하기, 더 행복하기, 어디서나 즐기기 숙제를 받았다. 일단 그렇게 되어보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늘 즐겁고 행복하고 건강할 수는 없다.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기에. 그저 더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모든 순간을 바라보며 더 자주 웃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수 밖에.

그러고보니, 나처럼 창의성 없는 보통의 사람에게는 정규과정이 있고, 그 트랙을 따라가면 되었던 학창시절이 참 쉬웠다. 때로 잘하거나 못하거나 부침(浮沈)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또 다시 도전해 보는 것에 대한 보호를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 세상에는 그리 흔치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지금 학교에 있는 사람들, 배움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만족하고 지금 그 자리를 충분히 누리는 것이 맞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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