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정연권>기쁨과 행복한 삶… “나는야 늙은 농부”
정연권 색향미야생화연구소장
입력 : 2024. 09. 04(수) 17:56
정연권 색향미야생화연구소장.
뜨거웠던 여름이 갔는지 이른 아침에는 시원하여 국화 돌보는 시간이 수월하다. 밤새 잘 있는지 대화를 나눈다. 유인 연출하고 물을 주면 춤추며 반긴다. 날마다 마음이 즐겁다. 꽃을 보면 내가 좋지 꽃이 좋은 게 아니다. 꽃은 그때와 조건에 따라 자라고 꽃을 피운다. 거기 맞춰 돌보며 위안과 기쁨을 얻는다. “꽃 한 송이 이상 신비는 없다”라는 말을 새겨본다.

샤인머스켓 포도가 나왔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국화 작업 마치고 바로 달려갔다. 안주인은 “일 년 만에 뵙네요” 벌써 일 년이 지났구려 허허 웃는다. 잘 익은 포도송이를 내민다. 현장농장에서 맛볼 수 있는 특권이다. 싱그럽고 달콤했다. 단맛이 온몸에 퍼지니 행복했다. 문자가 울린다. 황금배도 수확이 시작됐다고 한다. 배 과수원으로 갔다. 선별 포장한 상자에서 피땀의 성과물을 보았다. 사과배라 불리는 황금배는 시원하면서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국화밭과 포도 하우스와 배 과수원에서 참맛을 즐기고 기쁨과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농사는 만사의 뿌리다. 부지런하고 선한 농부들 덕분에 귀한 먹거리가 생산돼 우리가 생명을 영위하고 살아간다. 농부는 생명의 파수꾼이다. 농부가 없으면 아무도 살 수 없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농사짓는 농부들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하다는 농본주의를 대변해 주고 있다.

농사짓는 사람은 2024년 현재 90만명으로 전체 인구는 5000만명의 1.8%다. 90만명이 5000만명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식량 자급률은 24%다. 외국에서 식량이 안 들어오면 하루 한 끼 정도 겨우 먹을 수 있는 비율이다.

농사지은 사람들을 ‘농부’, ‘농민’, ‘농사꾼’, ‘농업인’ 부른다. 농업과 관련된 사람들을 지칭하지만 사용되는 맥락이나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다. 각각의 용어를 ‘챗GPT’ 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농부(農夫)는 전통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을 의미한다. 주로 지역사회와 밀접한 농사를 짓는 사람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농민(農民)’은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좀 더 포괄적 표현으로 나타날 때 사용한다. 역사적으로 농민은 사회적 지위나 계층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현대에는 단순히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농사꾼’은 구어적이고 비 격식적인 표현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을 의미한다.”

정리하면 농부는 가족을 돌보고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다. 농민은 사회적으로 직업의 한 부류로 구성된 사람들이다. 농사꾼은 비하적이며 자신을 낮출 때 쓰지만 전문가이다. 농업인은 농사 수지를 따지는 경영인이다. 농업경영체를 운영하는 경영주다.

필자도 지난 7월 농업경영체에 등록했다. 등록돼야 농사짓는 사람으로 인정된다. ‘구례지리산콩영농조합법인’에 가입하고 콩 농사를 짓는다. 8월에는 ‘구례농업협동조합’ 조합원에 가입해 농사지은 사람으로 정부 공인과 공동체 구성원이 됐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학석사 학위를 가졌다지만 농사에 적용은 무리가 있었다.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퇴임했으나 직접 하는 농사일은 서툴렀다. 30여 년간 야생화연구에 전념하며 지방행정의 달인과 신지식인이 되었지만 농사와 무슨 상관인가. 야생화 특품화, 향수, 압화 등 많은 상품을 개발하고 농가들이 수십억 원을 벌게하는 기술지도를 하였으나 의미가 없다. 국화 수천 점 재배하여 국화전시회를 하였지만 먹는 농사는 처음 짓는다. 다른 농사는 서툴어도 야생화 분야는 최고의 전문가라 자부하고 싶다.

농업, 농촌, 농부를 사랑해야 할 필자는 도시재생사업을 한다고 다른 길을 걸었다. 잘하려는 의욕으로 새벽부터 골목길을 누비고 국화전시회 등 분투했지만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중도하차 했다.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을 버리니 세 가지 일이 생겼다. 그동안 연구했던 야생화를 인문과학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해 ‘색향미야생화연구소’를 설립했다. 1인 연구소라 일하기 편안하다. 그동안 모은 자료와 경험들을 정리하고 심층 연구 분석한다. 옥잠화 향기 등과 조향(調香)하여 소박한 립스틱형 향수를 만든다. 상큼하고 달콤하면서 은은한 향기가 일품이다. 지인들을 만날 때 하나씩 주니 좋아한다. 나눔의 즐거움과 행복이다.

농부로서 새벽에 국화를 돌본다. 행사를 염두에 두지 않으니 마음 편안하다. 행사에 꽃이 피지 않을 때 스트레스는 필설로 형언 어렵다. 노심초사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다녔는데 이제는 걱정이 없다. 하늘이 주는 대로 거둬 나눠 주련다. 콩밭도 가끔 둘러본다. 무더위에 쑥쑥 자라니 대견하다. 내 밭에서 자라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또 ‘(주)플레이라움’ 회사에 비상근 전문위원으로 입사했다. 플레이라임(PLayraum)은 ‘우리가 함께하는 공간이 놀이터가 됩니다’는 뜻이다. 사람 중심의 공동체를 만들고 상생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건실한 회사다. 도시재생, 생태관광문화, 농산어촌 개발 등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발휘해 보탬이 되도록 진력하고 있다. 내 가치와 능력을 인정해주는 대표에게 고맙고 무한 감사하다.

새벽에는 농부이며 낮에는 연구소장, 전문위원 등 1인 3역이 즐겁다. 이제 농부가 자랑스럽다. 농업경영인보다 생명을 살리는 늙은 농부로 살고 싶다. 나눔과 베푸는 행복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 농부의 삶은 여유롭다. 돈을 벌려는 이기심도 잘하려는 욕심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람과 조직의 시계가 아니라 자연의 시계에 따라 살아간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갈 데가 많다. 지리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치고 싶다. “나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늙은 농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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