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한주>꿀벌이 없으면 사람도 없다
윤한주 농협창녕교육원 교수
입력 : 2024. 05. 29(수) 18:04
산과 들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각종 꽃이 지천에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겨우내 자취를 감추었던 동물들도 하나둘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몇 년 동안 겨울나기가 유난히 힘든 곤충이 있다. 바로 꿀벌이다. 겨울이 한번 지날 때마다 꿀벌의 집단폐사(실종) 관련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으며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양봉농가와 꿀벌의 수분(受粉)이 필요한 식물을 재배하는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5월 20일은 2017년 국제연합(UN)이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정한 ‘세계 벌의 날’이다. 아주 작은 곤충이지만, 꿀벌은 농가뿐만 아니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아주 크다. 대부분 꽃은 꿀벌 같은 곤충을 통해 수분하며 이를 통해 씨앗을 만들고 자손을 번식시킨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농작물 중 71%의 수분 작용을 꿀벌이 돕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대다수의 농작물이 꿀벌의 수분에 의존하고 있기에, 꿀벌의 개체 수가 줄어들면 농작물 수확량도 감소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꿀벌은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므로 지금부터라도 꿀벌의 보호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첫째,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 엇박자 현상을 들 수 있다. 생태 엇박자 현상은 기후환경이 변하는 속도를 동식물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외부온도에 민감한 변온동물인 꿀벌 역시 따뜻해진 날씨에 꿀을 채집하러 나갔다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둘째, 꿀벌의 먹이인 밀원(蜜源) 부족이다. 밀원식물은 벌에게 꽃가루를 많이 제공하는 꽃과 나무를 말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아카시나무가 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카시나무 개체 수 감소와 아카시꽃이 피는 4, 5월을 제외하면 영양분이 부족한 설탕물에 의존하게 되어 면역력 약화로 이어지게 된다. 셋째, 꿀벌 기생충인 응애의 확산이다. 꿀벌 응애는 꿀벌에 기생하며 체액을 빨아먹는 진드기로 피해를 입은 꿀벌 집단은 체중과 수명이 줄어 집단폐사로 이어진다. 마지막 이유는 농가에서 뿌리는 농약이다. 특히 요즘은 농약을 드론으로 살포하여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므로 유해 곤충뿐 아니라 꿀벌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꿀벌이 사라지면 작물의 생산량이 줄어 식량난과 영양부족으로 한 해 140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꿀벌 집단폐사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로 꿀벌실종의 원인이 다양하고 복잡한 만큼 전문가들의 진단과 대책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가장 큰 고민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이다. 사실 기후변화는 꿀벌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세계적인 기후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꿀벌과 관련해서는 서식지를 보호하고 복원하기 위한 밀원식물 면적을 넓히고자 하는 노력을 들 수 있다. 아카시나무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꽃나무를 심어 꽃 꿀과 화분 생산기반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1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장기 계획이기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바이러스와 응애에 강한 꿀벌을 만들어내는 시도가 진행 중이고 AI 기술을 활용하여 응애 방제의 최적 시기를 알아내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또한 꿀벌은 벌통 내의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기에 벌통 안에 센서를 부착하여 최적의 생존환경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살충제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드론 방제 금지 또는 드론을 이용하더라도 꿀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방법, 생물학적 방제, 서식지 다양화 등으로 살충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꿀벌실종의 원인과 대책에 대하여 학자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어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꿀벌의 보호를 더 미루다가는 인류에게 끔찍한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음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꿀벌과 관련된 학자, 사회단체, 산업종사자, 정부 등이 머리를 맞대어 제대로 된 원인을 파악하고 신속한 대책을 수립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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