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창수>포충사의 의병들-무대로 만나는 인문학
이창수 광주 남구 주민행복담당관실
입력 : 2024. 05. 21(화) 18:24
광주 남구 주민행복담당관실 이창수
광주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는 1592년 음력 7월 금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고경명과 둘째 아들 인후 의병장 안영과 유팽노 진주성2차전투에서 순국한 장남 종후를 배향한 공간이다. 포충사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살아남은 광주·전남의 유이한 서원이다.

1592년 음력 4월 왜군은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부산성과 동래성을 차례로 점령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결사 항전하는 신립마저 무너트렸다. 부산 앞바다에 닻을 내린 불과 20여 일 만에 한양마저 점령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을 지킬 것이라던 선조는 종묘사직과 백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도망쳤다. 이때 경복궁이 불탔고 도망치는 선조의 가마에 백성들이 돌을 던졌다 한다. 순식간에 국토가 유린당해 근왕군을 모집하려 해도 충청도 일부와 전라도밖에 없었다.

고경명이 의병을 모집하기 얼마 전 전라관찰사 이광이 4만명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이 8천명 경상도 관찰사 김수가 100명 남짓한 근왕병을 모집하였다. 왕을 구원하러 한양으로 가다가 용인에서 와키자카 야스히로의 1500명에게 반격당해 5만 대군이 무너져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고경명이 의병 6천을 모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창평에서 창의사로 추대받은 고경명이 서울로 진격하다가 일본6군 고바야카의 부대가 전주를 점령하려고 금산에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말머리를 돌려 금산으로 갔다. 고경명은 관군인 곽영과 합세하여 왜군을 공격하려 했지만 곽영은 싸울 의사가 없었다. 관군과 틈이 벌어진 약점을 노려 왜군이 고경명 부대를 포위 섬멸하였다. 고경명은 900명의 돌격대로 일본군을 공격하다가 둘째 아들 인후와 의병장 안영 유팽노와 함께 전사한다. 이때 고경명의 나이 예순이었다. 장남 종후는 아버지와 동생이 빠져나온줄 알았다가 나중에 순국 소식을 듣고 가노인 봉이와 귀인과 함께 시신을 수습해서 장성에 모셨다. 장례를 치른 후 의병 400명을 모아 진주성으로 향했다. 진주성에는 나주 김천일과 양산숙이 들어가 있었고 화순의 최경회 남평의 이종인 순천의 장윤 그리고 남원 출신 명장 황진이 일본군 10만을 상대로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전해인 1592년 음력 10월에 있었던 진주성1차 전투의 패전을 설욕하기 위해 일본군 10만에게 진주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593년 음력 7월 진주성은 왜란 7년 동안 단일 전투로는 최대의 규모였다. 왜군의 기세를 본 권율과 선거이 등의 관군과 명나라 군대도 일본군의 규모를 보고 포기하고 말았다. 경상도 의병장 곽재우도 진주성을 수성하는 건 자살행위라며 진주성 입성에 반대하였다. 오직 호남의병들만 죽기를 각오하였다. 진주성에는 목사 서예원 휘하 병사 3600명과 호남의병 3000명 등 6600여 명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들은 일본군을 상대로 9일 밤낮으로 전투를 치렀고 결국에는 피란민 6만과 함께 운명을 다하였다.

호남의병은 죽음으로 나라를 지켰고 그들을 의지한 백성과 운명을 함께 하였다. 호남의병들은 1백 년 동안 전쟁으로 단련된 일본군과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웠다. 일본군도 3만이 죽거나 다쳤다 한다. 의병들의 희생 덕분에 호남이 지켜졌고 호남의 쌀로 조선은 후일을 기약할 수 있었다. 이때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논개는 화순 출신 최경회의 후처이다. 남편의 원수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젊은 여인의 이야기가 지금도 진주성에 가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부모 형제를 위해 나아가 백성을 위해 호남의병들은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다.

인권·평화·민주로 설명되는 광주정신은 호남의병정신에 그 뿌리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의병정신은 동학으로 광주학생운동으로 소작쟁의로 4·19와 5·18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남구에서는 호남의병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지역이 위기에 처했을 때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무대로 꾸며 주민들과 함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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