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김강>요즘 TV 금쪽같은 네 새끼
김강 호남대 교수
입력 : 2025. 04. 29(화) 16:35
최근 한국의 방송가에서는 연예인을 전면에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이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동상이몽’, ‘미운우리새끼’, ‘전지적 참견 시점’, ‘나 혼자 산다’ 등 다양한 포맷의 가족 예능이 주말 황금 시간대를 장악했다. 이들 프로그램은 연예인과 그 가족의 일상을 공개하며 시청자에게 친근감과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한편, 연예인 자녀나 배우자까지 자연스럽게 방송에 노출하는 흐름을 만들었다.

특히 연예인 자녀들은 방송 출연을 계기로 ‘국민 아이들’로 불리며 부모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일부는 이후 연예계에 데뷔하는 ‘키즈테이너’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살림하는 남자들’처럼 다소 밉상스럽지만, 가족 전체가 방송에 등장하는 ‘가족테이너’ 현상도 두드러진다.

때마침 밀물에 노를 젓듯, 이제는 청소년의 임신과 가정을 다룬 ‘고딩엄빠’라는, 타이틀부터 겁나는 프로그램까지 제작됐다. 어른의 보호가 필요한 나이에 덜컥 부모가 된 ‘청소년 부모’들이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리얼’가족 프로그램이라고 호도한다. 그들이 ‘진짜’라면 비정상화의 ‘빠데루’인가.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미숙한 청소년의 방황과 체념적 수용을 당연시하거나 혹은 은근히 미화하려는 분위기가 매우 부담스럽다.

연예인 가족 예능은 단순히 가족생활의 공개를 넘어, 연예인 자녀들이 쉽게 대중적 인지도를 얻고 연예계로 진입하는 ‘세습 통로’ 역할을 한다. 이는 수많은 연기자와 방송인 지망생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실과 비교해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다. 연예인 가족이 방송을 통해 손쉽게 유명세와 기회를 얻는 모습은 ‘금수저’ 논란과 함께 연예계의 기득권 구조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이러한 불편한 세태에도 장점은 있을 것이다. 가족 예능, 특히 육아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결혼과 가족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을 심어줄 수 있다. 육아 경험이 없는 시청자들에게 바람직한 양육 행위와 가족 내 소통 방식을 간접적으로 학습할 기회도 제공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가족의 따뜻함과 화목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여 치유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첨예한 갈등이 불거진다. 방송에서 드러나는 연예인 가족의 부유한 생활, 고급 소비, 해외여행 등이 시청자들에게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게 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한다. 특히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연예인 가족의 ‘쉽고 빠른 성공’은 불평등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세대 전문가 엘리자 필비가 ‘인헤리토크라시’(Inheritocracy, 상속주의)라는 책에서 상세히 분석하는 바처럼, 과거에는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인생의 기회를 만들었던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실력주의)가 사회적 성공의 표준이었다면, 현대에는 부모나 가족의 부나 유명세를 배경으로 별다른 노력 없이 상류층에 진입하여 안락한 삶을 누리는 ‘상속주의’가 계층 이동의 대세가 된 셈이다.

게다가 어린 자녀들이 방송을 통해 과도하게 노출되면서, 사생활 침해와 아동권리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방송에서 얻는 인기와 관심이 아이들에게 부담이나 상처로 돌아올 수 있음에도, 프로그램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가족 예능이 ‘가족의 화목’이나 ‘세대 통합’을 표방하지만,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부적절한 방송 언어와 장면이 등장해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키거나, 건강하지 못한 가치관을 확산시킨다는 우려 또한 제기된다.

연예인 가족의 일상이 간접광고(PPL)나 협찬의 도구로 활용되면서, ‘가족의 행복’이 상품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아이들의 옷, 장난감, 여행지 등 모든 것이 상업적 목적으로 소비되는 구조다. 그에 따라 ‘오픈런’과 ‘완판’과 같은 이성 파괴적 문화도 우후죽순처럼 유통 중이다.

짚어볼 장면은 또 있다. ‘조선의 사랑꾼’과 ‘이젠 사랑할 수 있을까’ 등도 볼썽사납다. 도대체 왜 연예인의 놓친 사랑과 말 그대로 ‘연예’ 투쟁을 시청자가 시시콜콜 추적해야 하는지 의아하다. 대중문화의 위세가 거셀지라도, 연예인은 사회적 표상이 아니라 문화적 소비재다.

참고로, 미국에서 연예인이나 일반인을 소재로 한 가족 예능 프로그램은 비교적 드물다. ‘리얼 하우스와이프’ 시리즈나 ‘카다시안 따라잡기’처럼 주로 캐릭터들의 경쟁과 갈등, 드라마틱한 비즈니스 상황을 강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성격이 강하다.

언론의 무책임한 처세도 유감이다. 연예인의 사적 행보나 재산 증식 등에 관한 기사를 ‘과장된’ 제목으로 포장하여 독자에게 들이댄다. 기사 검색 클릭 수를 의식해서일까. 선정성이나 물화적 욕망보다 언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자성의 책임감이 요구된다.

연예인 가족 예능은 가족의 다양한 형태와 일상을 보여주며 긍정적 역할도 했지만, 세습 논란, 계층 불평등 심화, 아동권리 침해 등 구조적 문제점이 더 심각하다. 방송가와 시청자 모두 ‘재미’와 ‘화제성’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연예인 가족 예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책임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방송 제작진은 연예인 가족의 과도한 노출과 상품화를 자제하고, 다양한 가족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진정한 가치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탈무드의 교훈처럼, 껍질만 보지 말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범은 그려도 뼈다귀는 그릴 수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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