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철면피(鐵面皮)
최동환 취재2부 선임부장
입력 : 2024. 12. 23(월) 18:09
최동환 취재2부 선임부장
중국 송나라 때 손광헌이 잡다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북몽쇄언(北夢蔘言)’의 기록에 따르면 왕광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진사 시험에도 합격할 만큼 학문과 재능이 뛰어났으나 출세욕이 지나쳐 윗사람에게 아첨하기를 즐겨했다. 당시의 권력자가 습작한 시(詩)에 대하여 이태백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신운이 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권력자가 잔치를 벌였다. 거나하게 취한 권력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말채찍을 집어 들고 소리쳤다. “누가 이 채찍으로 한번 맞아 볼 텐가?” 왕광원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앞에 엎드렸다. 권력자는 채찍을 휘둘렀다. 왕광원은 그 채찍을 맞으면서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며 듣기 좋은 말로 권력자의 비위를 맞췄다.

이를 본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냐?”고 묻자 왕광원은 “그 사람에게 잘 보여 손해 볼 것 없잖나”고 했다. 이를 두고 당시 사람들이 “참안후여갑(慚顔厚如甲·부끄러운 얼굴 두껍기가 쇠와 같아) 부지불치(不知羞恥·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는 데서 철면피(鐵面皮)가 유래했다.

‘쇠처럼 두꺼운 낯가죽’이라는 뜻의 철면피는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사람을 이른다. 같은 말로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왕광원 못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판의 행태에는 인의는 찾아볼 수 없고 후안무치만이 보인다. 지난 3일 밤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계엄령을 선포하며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무력으로 침탈한 윤석열 대통령. 내란 혐의로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한 뒤에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부정선거 의혹’을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으로 내세우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 대통령의 행태는 후안무치로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알고도 이를 적극 막지 못하고 동조한 국무위원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압도적인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탄핵을 반대한 국민의힘당 의원들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히 훼손하는 후안무치한 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하루빨리 뿌리뽑히고 부끄러움을 아는 인의(仁義) 정치가 정착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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