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김강>맥베스와 12·3 비상계엄
김강 호남대 교수
입력 : 2024. 12. 19(목) 17:40
맥베스. 셰익스피어가 1607년경 쓴 작품으로 권력과 쿠데타를 주제로 한 스코틀랜드 비극이다. 충신이자 맹장이었던 맥베스는 마녀들의 주술적 예언을 듣고 왕이 되기 위해 덩컨 왕을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하지만 그의 통치는 불안정하고 폭력적이며, 권력 유지를 위해 여러 사람을 살해한다.

맥베스의 쿠데타는 내부 지지 기반의 부재와 잘못된 전략으로 인해 바로 파멸로 추락한다. 자신의 지지자였던 뱅코우를 제거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외부 세력과의 네트워킹에도 실패한다. 마침내 맥베스의 폭정에 반발한 귀족들과 왕자가 연합하여 그를 무너뜨린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권력의 유혹과 그로 인한 정상의 붕괴를 보여주며, 예언과 운명에 대한 인간의 자유 의지를 탐색한다.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 사로잡혀 자신의 운명을 악으로 이끈 비극적 인물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도 어찌 보면 그의 또 다른 후계자일 것이다.

맥베스의 쿠데타에는, 마치 지금 우리의 현실을 예견한 듯, 매우 흥미로운 역할이 등장한다. ‘레이디 맥베스’의 개입이다. 맥베스 부인의 성격과 행동은 작품의 전개와 주제를 좌우할 정도다. 그녀는 야망과 권력의 화신이다. 남편 맥베스보다 더 야심적이고 무자비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녀는 덩컨 왕을 살해한 후 왕관을 차지하는 음모를 직접 세우고 남편을 집요하게 몰아간다. 그녀의 악독한 의지와 결정력은 맥베스를 돌이킬 수 없는 범죄의 세계로 ‘유혹’하기에 권력과 야욕의 위험성을 예고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당대의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다르게 지배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서슴지 않는다. 남편을 조종하고 그의 남성성에 도전하여 반란을 실행토록 제어한다. 이러한 성역할의 전복은 셰익스피어가 성별과 권력의 관계를 규명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녀는 자신의 여성성을 포기하고 남성적 특성을 가지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밝힌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야망에 사로잡혀 사악한 존재로 변모할 수 있음을 작가는 미리 경고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됨에 따라 레이디 맥베스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살인의 악령을 주문할 정도로 남편을 독하게 통제하던 그녀는 양심의 가책에 정신적으로 붕괴하여 자살에 이른다. 그녀의 최후는 망상적 권력 추구가 가져오는 비극적 결과로서 도덕성과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전달한다.

기막힌 우연이다. 맥베스의 악행이 바로 얼마 전 대한민국의 상황과 그림자처럼 겹친다.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느닷없는, 어이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명태균과 김여사는 요샛말로 ‘피처링(feat)’한 셈인가. 영국의 한 매체는 그녀를 한국의 레이디 맥베스, 마키아벨리, 마리 왕투와네트, 심지어는 성형 제왕 마이클 잭슨에 비유한다. 엄청난 시공간을 뛰어넘어 쿠데타에 의한 권력 남용과 정치 불안이라는 주제를 서로 기막히게 공유한다.

맥베스는 자신의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도덕적 경계를 넘어서며 왕을 살해하고 권력을 찬탈한다. 그의 행동은 스코틀랜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자신의 몰락을 초래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도 이와 유사하다. 국회의 반국가 활동이라는 근거 없는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하며 언론 통제를 획책한다. 이러한 조치는 정치적 불안을 가중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행위이다.

정치적 야망과 도덕적 타락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 자극받아 왕이 되려는 야심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의 도덕적 타락과 심리적 고통으로 이어진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자신의 무능을 감추고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이었지만 정치적 야망이 도덕적 기준을 무시할 때 생기는 참담한 결과를 입증한다.

이러한 권력자는 시종일관 권력에 몰두하고 정치적 불안을 야기한다. 맥베스는 권력 수호에 점점 더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지만, 자신의 불안과 종말에 다가설 뿐이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거하려 했지만, 외부 세력에 의해 무너진다. 윤 대통령 역시 비상계엄을 선포로 정권 사수의 역전을 꾀했으나 오히려 국내외 반발과 저항에 처했다. 평소답지 않은 국회의 신속한 계엄해제 표결 덕분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떼창하게 된 것은 천우신조랄까.

흔히 국가를 전복시키는 행위를 쿠데타(coup d’etat)로 부른다. 프랑스 용어인 이 말의 본뜻은 ‘국가를 향한 타격’을 의미한다. 맥베스처럼, 대개는 하위 권력이 초법적 수단을 통해 상위 권력을 찬탈하며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일컫는다. 반면에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친위 쿠데타’에 속한다. 쿠데타 연구자인 미국 카네기 멜론대 존 친 교수는 이를 현직 행정부 수반이 사법부나 의회와 같은 다른 권력을 상대로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연장 또는 확대하려는 시도로 정의한다.

오늘 “불화의 겨울”이 지나면 다시 맞이할 ‘서울의 봄’, 왕권을 노리는 여야 정쟁이 극심해질 듯 걱정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정치가 국민을 위한다면서 정작 본인의 범죄에 대해서는 염치 불고, 적반하장과 유구무언이다. 정치가인지 범죄자인지, “선이 악인지, 악이 선인지” 마녀들의 말대로 혼돈이다.

맥베스의 마지막 독백처럼, 대한민국의 “내일은 … 바보 천치가 지껄이는,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찬,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니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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