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여전히 그날, 그 현장에 갇혀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2주기…당신은 ‘안전’ 하십니까 <중>
참사 피해 생존자의 증언
인파에 깔렸다 극적으로 구출
대인기피증 등 후유증 시달려
숨진 옆 사람들 생각에 죄책감
책임자 아닌 희생자 비난 고통
입력 : 2024. 10. 28(월) 18:44
지난 2022년 11월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 골목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민현기 기자
2022년 10월 29일. 우리나라에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끔찍한 상처가 남았다. 시민들은 2년간 유지됐던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해제되면서 기대감에 부풀었고 수천명의 청년들이 이태원의 좁은 골목으로 모여 들었다. 참사가 발생했던 골목의 군중 밀집도는 가로세로 1m 안에만 16명이 있을 정도로 치솟았고 끝내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사 직후 조직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방대한 수사를 거쳐 참사를 책임 있는 기관들의 무책임한 대응에 따른 인재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안전불감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좁은 골목에서 행사를 진행하면서 경찰에 집회신고조차 하지 않았고, 안전요원은 턱 없이 부족했다. 이태원 참사가 방역 조치가 해제됐다는 특수성이 있었다고 치부하기엔 ‘폭염이 길어서’, ‘가을 날씨가 좋아서’ 등 명분이 달라질 뿐 중요한 건 군중 인파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는 게 중요한 맥락이다. 이태원 참사는 남 일이 아니다. 평소와 같은 365일 중 하루였으며 청년들은 행사가 진행되니까 즐기러 갔을 뿐이다. 친구, 가족, 심지어 자신이 휘말릴 수 있었다. 전남일보는 2년 사이 군중인파 재난사고에 대한 대책, 우리의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리고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점검한다. /편집자주

“그날 내가 구조되지 않았으면, 다른 사람이 살지 않았을까요?”

159명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당시 인파에 깔렸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생존자 이모(36·광주시)씨가 한 말이다.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친구들과 서울로 향한 이씨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태원을 찾았다가 참사에 휘말렸다. 사고 당일 이태원역 1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이씨 일행은 의지와 상관없이 인파에 휩쓸려 해밀턴호텔 골목까지 이동했다.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미 이씨는 가고싶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인파에 휩쓸려 골목길을 내려가던 이씨는 서서히 붕 뜨는 느낌을 받으며 쓰러졌다. 가장 아래쪽에 깔린 이씨는 군중에 골반 위쪽까지 깔린 상태로 짓눌렸고, 극적으로 구조된 이후에도 하체에 장시간 피가 통하지 않은 데 따른 장기 손상이 심해 ‘횡문근융해증’ 진단을 받고 한동안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이씨는 참사 이후 2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1년이 넘도록 불면증과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등에 시달렸다. 집 앞 골목길만 가도 사람들과 함께 깔려있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잠을 자다가도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서서히 의식을 잃는 모습들이 불현듯 떠올라 호흡 곤란까지 겪었다.

심리치료를 받고 최근 결혼까지 하며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당장 결혼식장에서도 하객들이 공간을 점점 채우자 자신도 모르게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참사 이후 이씨가 느끼는 감정 중 공포나 두려움보다 ‘죄책감’이 가장 크게 이씨를 괴롭히고 있다. 당시 이씨가 수백명의 사람과 뒤엉켜 깔려있을 때 할 수 있는 몸동작은 고개를 돌리는 정도였다. 출동한 구조당국은 한 덩이처럼 팔과 다리가 서로 뒤엉킨 피해자들을 한번에 빼낼 수 없었다. 위쪽부터 사람들을 구조하기에는 아래에 있는 생존자가 기다려주지 않았다.

서로의 비명은 그 무엇보다 간절했고, 몇번이나 의식을 잃고 되찾기를 반복했다. 구조대는 여러차례 뒤엉킨 사람들을 빼내기 위해 힘써보고 만약 미동도 안할 경우 옆 사람 구조를 시도했다.

이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이씨를 발견하고 구조에 나섰고 다리가 엉켜 실패하자 다른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이동할 때 이씨는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옆 사람이 밉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경찰이 5~6명의 시민들과 함께 자신을 극적으로 구출했다. 이씨는 차가운 아스팔트에 누워 힘겹게 자신이 깔려있던 현장을 바라봤다.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스러워 했고, 자신과 함께 비명을 지르던 옆 사람은 정신을 잃은건지 이미 숨진 건지 더 이상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시민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자신의 옷을 덮어주기도 했다.

이씨는 “옆 사람들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우질 못하고 있다. 살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보다 죄책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라며 눈물을 훔쳤다.

참사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이씨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태원에 간 죄’ 때문이다.

참사가 발생한 시점부터 관련 뉴스 댓글에는 사상자를 탓하는 내용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안전대책이 미흡했던 정부·지자체에 대한 비판보다 희생자들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 한국갤럽이 참사의 일차적 책임을 묻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태원에 간 사람들’로 답한 사람이 14%였다. 대통령·정부(20%), 경찰(17%)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비율이었다.

이에 ‘서양 명절인 핼러윈에 유흥가에 놀러간 철부지’라는 말은 주홍글씨처럼 새겨졌고 피해자와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우리 애는 착실했다’며 항변하는 가운데 현장 경찰에게만 유죄가 인정되고 지자체와 경찰 지휘부 등 윗선은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고 있다.

이씨는 “이태원이라서, 핼러윈이라서 참사가 발생한게 아니다. 그동안 안전에 대한 대책과 인식이 미비한 상태로 이어져 왔고, 이전의 수많은 행사에서 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서 “이태원 참사를 남의 일로만 생각하면 안된다. 평범한 365일 중 하루였고 친구, 가족, 심지어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었음을 공감해달라”고 호소했다.
민현기 기자 hyunki.min@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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