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약탈범죄’ 외면하는 안일한 윤석열 정부
전세사기특별법 거부권 행사
입력 : 2024. 05. 29(수) 17:25
지난 28일 국회를 통과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등 4개 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21대 국회가 이날로 종료되므로, 국회법에따라 거부권을 행사한 4개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앞서 정부는 이날 오후 국무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없었다는 게 이유지만 전세사기 피해 구제에 인색한 정부와 여당의 안일한 대처가 안타깝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공공기관이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사들여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주고, 나중에 경·공매 등을 거쳐 임대인으로부터 자금을 회수하는 이른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다. 피해주택 매입을 요청해도 우선 공급받지 못한 피해자 등에 대해서는 공공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는 조항도 담겼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서민이 조성한 주택도시기금이 원래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될 뿐 아니라 향후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고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5월 제정된 전세사기특별법은 까다로운 요건으로 제정에 다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로 인정 되도 은행 등에서 긴급 저리 대출을 받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세사기 증가에 따라 전세를 회피하는 수요가 월세로 몰리면서 임대료가 올라가는 부작용도 나왔다. 당장 전세사기 피해자 단체는 이날 대통령실 앞에서 ‘특별법 개정은 절망의 벽 안에 갇힌 피해자들에게 숨 쉴 구멍’이라며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즉각적인 공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세사기를 ‘약탈범죄’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을 표명해 왔다. 하지만 지난 해 인천에서 전세보증금을 날린 한 피해자는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현행법으로 악질적인 사기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정부마저 그들의 사기를 부추기기는 것일까. 전재산을 날린 애꿎은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하는 정부와 여당을 강력히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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