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庭園·임효경>바닷가의 고마운 사람들
임효경 완도중 교장
입력 : 2024. 05. 22(수) 17:47
5월 찬란한 햇살이 온 대지를 감싸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올해 봄은 유난히 쌀쌀맞아서 더 반가운 햇살입니다. 완도 청해진항의 여름은 바닷바람으로 그렇게 뜨겁지 않고, 푸르른 완도의 수목들은 그 어느 지역보다 울창하여 안정감을 주고, 평안함을 줍니다.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완도는 ‘울며 왔다가 울며 간다’고 합니다. 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정말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 했는데, 이 아름다운 자연이 웃게 해 주었습니다. 3개월 후, 갈 때는 분명 눈물을 보일 것 같습니다. 언제 또 올거나, 언제 또 해양치유의 땅에서 이렇게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까? 돌아보면, 여기까지 오느라 나 자신도 참 수고가 많았습니다. 오늘은 나의 교직생활 돌아보기를 할까 합니다. 그 지난한 세월 중에 나와 함께 학교 가는 길에 동행해 준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38년 전 11월 여천 화양중이 나를 부를 때,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서울 남산에서 바로 돌아왔습니다. 비행기 대신, 털털거리는 완행버스타고, 마침내 도착한 나진마을, 아버지 등을 보며 바닷가 언덕 위 학교 가는 돌길을 걸어가던 장면이 내 교직생활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바닷가에서 시작한 ‘나의 교직 생활’ 스토리가 여러 바다를 거쳐 완도 청해진항 바다에서 마무리를 합니다.

화양중 앞 나진 바다는 말없이 나의 외로움과 한숨을 받아주었고, 나의 눈물과 땀을 씻어주었고, 나의 간절한 기도도 들어주었습니다. 바다는 그 모든 것을 안아 줄 만큼 품이 넓은 존재였습니다. 그곳에서 눈이 까맣고 어여쁜 쪼그마한 아이도 만났고, 아이들과 씨름하듯 수업하느라 지치고 속상하여 울 곤 했던 초짜 교사를 위로해 주던 우리 반 반장 아이도 만났습니다. 그 아이들은 이제 아이 엄마들이 되어, 나와 같이 늙어가며 인생을 이야기 하는 동반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시절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바다는 완도 노화 바다였습니다. 전남의 교사로 근무하면서 가장 큰 도전이자, 가장 특별한 경험은 섬마을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새 10여년 경력을 쌓으며, 육지에서 매일 1시간도 넘는 출퇴근 길 위 생활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치게 했었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던 차, 완도 노화고등학교 근무를 명령받았습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섬마을 선생님으로 근무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섬마을 학교도 녹록치는 않았습니다. 해남 땅끝마을까지 차로 2시간 운전하고, 철선에 차를 태우고 40분 바다 위를 운행하고, 선착장에서 또 차로 10분 운전하여 도착하는 노화고까지 가는 첫 길엔 남편이 동행해 주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새벽 5시에 만나 카풀하고 다녔던 ‘운명의 공동체’ 생활 같이 한 선생님들이 참 그립습니다. 그 안에서 같이 생활할 때는 몰랐는데, 이제 밖에서 돌아보니, 참 그리운 시절이 되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섬마을 선생님을 노래한 트로트도 있지만, 바닷가 마을엔 애잔하고도 끈끈한 정서가 묻어 있어서, 그 생활은 잔잔한 슬픔과 아픔이 바탕이 됩니다. 자연의 섭리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지만, 좁은 지역 공동체 안에서 속속들이 다 알아버리는 속사정들로 인하여, 답답함을 느끼지요. 가장 진한 아픔과 그리움이 머문 섬마을 학교생활도 이제 추억의 한 모서리에 담겨있습니다. 4년간 섬마을 생활은 내 교직 성장의 디딤돌이었습니다.

세 번째 바다는 장흥 안양 땅끝 바다입니다. 장흥고 4년 근무 중에 2000년도 막 태동한 컴퓨터 메일로 매일 편지를 주고받던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 아이의 집은 안양 바다가 내다보였습니다. 그 가정을 방문하여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심한 신체장애를 가지신 것을. 그 아이는 누구보다 밝고, 맑고, 바른 학생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아이로부터 내가 사랑을 받고 생활 지도를 받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인색하고 서툴렀던 나를 깨우쳐준 아이였지요. 내 사랑 지현이가 있어 참 좋은 날들에 감사합니다.

5월 내내, 핸드폰 뚜껑을 열면 기분 좋은 사진이 나타나게 했습니다. 어느덧 나와 교직동료가 된 제자가 나에게 보내 준 감사의 꽃다발을 찍은 것입니다. 그 사진을 매일 핸드폰 열 때마다 나만 봅니다. ‘빛나는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빛나는 가난한 시절에 온 힘을 다해 서태지를 사랑하던 꿈 많던 여고생, 나의 교직 생활을 끝까지 동행해 준 친구 같은 제자입니다.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며, 빛나는 늘 내 곁에 있을 것을 믿기에 너무 좋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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