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길은 고통을 통한 자기 정화
[신간]아제아제 바라아제
한승원│문이당│1만8000원
한승원│문이당│1만8000원
입력 : 2024. 10. 24(목) 16:11
한승원 작가.
삶의 의지와 그에 따르는 고통의 체계는 자기 정화의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연꽃이 시궁창 같은 진흙 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만 아름답게 필 수 있듯이, 인간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도 그러하다는 것.
한강 열풍이 가시지 않은 지금, 한승원 작가의 대표작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개정판이 이달 재출간됐다. 한국 문단의 거목 한승원 작가는 이달 들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아버지’로 더 유명했을 것이다. 1939년 장흥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서 ‘목선’으로 등단된 뒤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수많은 문학상을 휩쓸었다. 한강이 대한민국 문학의 새 역사를 쓰기 전 그의 글들은 어쩌면 ‘한승원’이라는 화수분이 존재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85년 첫선을 보인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바 있는 동명의 영화 원작이기도 하다. 초월적인 이상 세계를 좇는 진성과 파계하고 맨몸으로 세속을 떠도는 청화(순녀), 두 여승의 삶을 통해 자유인의 길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인 구도 소설이다.
청정암 절의 여승 진성과 같은 절에서 행자 생활을 하는 순녀는 은선 스님의 남다른 보살핌을 받아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임에도 아직 계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순녀는 남다른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학교 선생 현종의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평생 그의 곁에 붙어 있겠다고 결심하지만, 방학이 끝난 후 학교에는 이들을 향한 헛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결국 현종 선생은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이는 순녀의 가슴에 깊고 큰 구덩이가 패게 만든다.
진성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오라는 은선 스님의 뜻에 따라 절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대학 생활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진성은 은선 스님이 있는 청정암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우종남이라는 남학생이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종교적 믿음을 동요 시키지만, 그가 방학 때 청정암으로 돌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진성이 만행에서 돌아왔을 때 은선 스님은 중생들 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아픔과 고난을 함께하지 않은 것을 꾸짖는다. 진성은 은선 스님이 기다린 것이 자신이 아니라 속세를 헤매고 다니는 순녀임을 깨닫고 크게 실망한다.
진여의 땅으로 가자는 뜻을 지닌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의미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상적 삶에의 회귀로 이해된다. 작가는 사랑과 자기 투사의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1985년 5월 초판에서 그는 원래 제목으로 생각해 놓았던 ‘비구니’가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바뀌게 된 배경과 등장인물들을 통한 독자들의 여파를 걱정하는 한편 공감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는 “소설은 핏빛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애욕과 환혹, 미망 속을 방황하는 인물들의 몸부림과 고뇌하는 모습을 심도있게 다뤘다. 순녀라는 인물을 통해 애욕의 허무함과 미망과 방황을 극복하는 과정에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순녀가 미망, 방황, 허무를 극복해 내는 문제는 나와 당신,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 모두의 문제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정의하는 자유인은 깨달음의 길을 열어 해탈한 사람을 의미한다. 격동과 혼란이 끊이지 않는 정세 속 더 많은 자유인의 등장은 자연과 세상의 근원을 되돌아보는 토양이 될 것이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한강 열풍이 가시지 않은 지금, 한승원 작가의 대표작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개정판이 이달 재출간됐다. 한국 문단의 거목 한승원 작가는 이달 들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아버지’로 더 유명했을 것이다. 1939년 장흥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서 ‘목선’으로 등단된 뒤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수많은 문학상을 휩쓸었다. 한강이 대한민국 문학의 새 역사를 쓰기 전 그의 글들은 어쩌면 ‘한승원’이라는 화수분이 존재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85년 첫선을 보인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바 있는 동명의 영화 원작이기도 하다. 초월적인 이상 세계를 좇는 진성과 파계하고 맨몸으로 세속을 떠도는 청화(순녀), 두 여승의 삶을 통해 자유인의 길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인 구도 소설이다.
청정암 절의 여승 진성과 같은 절에서 행자 생활을 하는 순녀는 은선 스님의 남다른 보살핌을 받아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임에도 아직 계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순녀는 남다른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학교 선생 현종의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평생 그의 곁에 붙어 있겠다고 결심하지만, 방학이 끝난 후 학교에는 이들을 향한 헛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결국 현종 선생은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이는 순녀의 가슴에 깊고 큰 구덩이가 패게 만든다.
진성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오라는 은선 스님의 뜻에 따라 절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대학 생활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진성은 은선 스님이 있는 청정암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우종남이라는 남학생이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종교적 믿음을 동요 시키지만, 그가 방학 때 청정암으로 돌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진성이 만행에서 돌아왔을 때 은선 스님은 중생들 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아픔과 고난을 함께하지 않은 것을 꾸짖는다. 진성은 은선 스님이 기다린 것이 자신이 아니라 속세를 헤매고 다니는 순녀임을 깨닫고 크게 실망한다.
진여의 땅으로 가자는 뜻을 지닌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의미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상적 삶에의 회귀로 이해된다. 작가는 사랑과 자기 투사의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1985년 5월 초판에서 그는 원래 제목으로 생각해 놓았던 ‘비구니’가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바뀌게 된 배경과 등장인물들을 통한 독자들의 여파를 걱정하는 한편 공감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는 “소설은 핏빛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애욕과 환혹, 미망 속을 방황하는 인물들의 몸부림과 고뇌하는 모습을 심도있게 다뤘다. 순녀라는 인물을 통해 애욕의 허무함과 미망과 방황을 극복하는 과정에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순녀가 미망, 방황, 허무를 극복해 내는 문제는 나와 당신,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 모두의 문제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정의하는 자유인은 깨달음의 길을 열어 해탈한 사람을 의미한다. 격동과 혼란이 끊이지 않는 정세 속 더 많은 자유인의 등장은 자연과 세상의 근원을 되돌아보는 토양이 될 것이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