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문학을 향한 폭력·문화가 가하는 침묵
박찬 취재2부 기자
입력 : 2024. 10. 14(월) 18:40
박찬 취재2부 기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전 국민이 들썩인 가운데 그의 작품을 역사 왜곡이라고 폄훼하는 세력이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와 정치는 본질적으로는 독립적 가치를 지닌 분야지만, 역사, 사회문제, 현안 등을 논할 때 양립하기도 하고 양 분야의 애매한 침범 영역을 두고 대립하기도 한다.

한강 작가를 향해 강한 비판을 쏟아부은 김규나 작가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는 모두 한강의 작품이 제주 4·3 사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라는 평을 들었던 작품의 태생적 탄생 요인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부류의 사람들일 것이다.

문학은 숫자로 된 기록과 형식화된 데이터로 해석해 온 역사가 담아내지 못한 개인적 사유를 텍스트로 조망한 대안 기록물이 되기도 한다. 즉 이런 작품에 ‘역사 왜곡’과 ‘사상적 편향성’이란 프레임을 씌우는 건 창작 영역의 최전선에 있는 문학을 향한 직격적인 폭력이다.

반면 문화가 국제정세를 위시한 정치 영역을 교만하게 다루는 사례도 결코 적지 않다.

광주시에서 지난달 7일부터 열리고 있는 국제 미술전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 이스라엘 문화기관인 CDA홀론(국가관)을 앞세운 이스라엘도 30여개의 국가관 중 하나로 포함됐다. 이에 5·18을 겪은 광주가 타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과 고통에는 무감각하고 위선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광주정신의 계승과 연대를 가치로 내걸었던 광주비엔날레가 정작 이스라엘의 대량학살 국가관에는 침묵하는 게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광주시 곳곳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한동안 걸리기도 했다.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기습 공격을 가한 지 1년이 지났다. 전쟁은 가자지구에서 레바논, 시리아, 이란 등으로 확대되며 중동 전체가 전쟁터로 변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과 가자지구 보건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가자지구에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인(민간인 포함)은 4만2000여명에 달한다. 사망자의 약 70%는 어린이와 여성이다.

결국 전쟁과는 무관한 이들이 정치적 야망과 뒤틀린 국가관으로 인해 무수히 희생되고 있다.

정치가 현상에 대한 직관적 조사와 조치라면 문학(문화)은 자료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과 인생관이 시간과 시대를 관통해 해후 되는 예술적 수단이다.

이 두 가지는 시대·국내외를 불문하고 크고 작은 서로의 영역 침범으로 오랜 논란과 논쟁을 빚어왔다.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숙제에 반면교사로 삼을 사례들이 전쟁과 노벨문학상 등을 통해 현재도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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