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한국 현대 문화와 전통의 융합을 이끈 민속학자
415. 귄의 미학자 한창기
입력 : 2024. 10. 03(목) 17:34
뿌리깊은나무 표지-특집 한창기 중에서 발췌
샘이 깊은 물 표지-특집 한창기 중에서 발췌
뿌리깊은나무 광고와 한창기 육필-특집 한창기 중에서 발췌
“우리 역사에서 세종대왕과 문종 다음으로 거론할 사람은 한창기다.” 지난주 순천 낙안초등학교 체육관을 빌려 진행된 <남도인문지성예술학예제>에서 홍가이(전 MIT교수)가 선언한 첫마디였다. ‘한창기 민예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중요성’이라는 제목의 발표였다. ‘뿌리깊은나무 학예제-학(學)으로 예(藝)를 짓다(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한창기, 천경자 관련 프로그램 일환이다. 남도 사람이라면 어떤 누구라도 한창기에 대해서 모를 바는 아닌데, 세종대왕과 문종 다음으로 한창기를 거론해서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임진택의 판소리 ‘소리 내력’ 공연에 고수로 참여하였다. 홍가이는 이와 관련된 내력을 저서 ‘기(氣) 오스모시스 신(新) 예술론(뷔더북스)’에 밝혀두었다. “동양 사유와 한국 고유의 선가적 수행을 통한 새로운 예술 담론 기오스모스의 예술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기오스모스적 예술들은 하나같이 21세기의 새로운 예술사조로서 세계예술을 선도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기(氣)의 삼투압을 이론물리학으로 추적한 책이다. 한글 창제의 원리와 한글의 기운생동함에 대해 한창기와 연결 짓는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끝 모를 해체주의와 허무주의적인 현대미술의 상황을 부정하며 참예술의 방향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나는 홍가이의 접근을 미래지향적으로 평가한다. 매우 짧은 기간 재위했던 문종을 언급한 것은 아버지 세종을 이은 각종 정책과 측우기의 발명 연구보다 6품 이상까지 윤대(輪對)를 허락하는 등 민심을 살핀 언론관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한창기의 민중 중심 업적을 이에 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여러 발표와 더불어 한창기의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실천, 우리 것에 대한 깊은 천착과 미학적 실천, 무엇보다 내가 전공한 이른바 민속 담론을 평생의 화두 삼아 실천해온 역사에 관한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 한창기



선완규가 <특집! 한창기(창비, 2008)>에서 한창기의 글을 통해 그이를 만난 소회를 적은 글이 사무친다.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새로움의 가지를 뻗는다는 뿌리 깊은 나무의 개념, 참 특별했던 삶, 오래되어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샘이 깊은 물의 생각들, 가장 중요한 배움은 생각하기의 배움이라는 배움 나눔의 표어 들은 상상력과 창조력이 곧 생산력이 되는 현대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늦었지만 그래서 더 유의미한 발견이었다. 그는 가장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고, 현대문명과 가장 많이 접촉한 사람이었다. 그곳에서 머물지 않고, 현대문명에 등을 돌리고, 전통 가운데에서도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농촌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복고주의라고 할 수 있지만, 아니다! 진정한 현대성은 우리 전통문화 또는 전근대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대문명의 인문적인 시간 속에서만 제대로 된 문명이 꽃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생명의 근원에서 문화가 꽃피어나야지만, 다시 말해 자연의 시간 속에서 산 우리 조상들이 자연스럽게 꽃피운 문화야말로 가장 현대성을 지닌, 진정한 현대성을 지닌 문화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창기를 현대성에 등 돌린 진정한 현대인, 한국 현대성의 랜드마크라고 역설했다. 생면부지 한창기를 사숙했던 내 얘기를 대변해주는 듯하다. 이번 ‘뿌리깊은나무 학예제’에서 ‘한류의 원조 한창기 선생의 한글 사랑과 언론 업적’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던 오태규의 발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한창기를 K-문화의 원조라고 말했다. 헤아릴 수 없는 업적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내가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교과서 삼았던 책들이기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토론자로 나섰던 이현경도 주목했지만 지금 광주에서는 30주년을 맞은 제15회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예술감독 니콜라 부리오가 내세운 주제가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다. 영어로 ‘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 21세기 현대사의 복잡성의 좌표를 그리는 시도라는 선언이 선명하다. 그가 우리 판소리의 울림과 공명에 대해 얼마나 깊은 이해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판소리라는 주제를 내세워 분쟁적 국면, 반-이주 장벽, 감금, 사회적 거리 두기, 분리정책 등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공간과 정치적 구조라는 공유지를 설정한 것은 유의미하다. 마치 한창기가 산업화의 풍경에서 스러져가는 전통들, 그 안의 철학들, 예컨대 판소리를 주목했듯이 말이다. 세종대왕 다음으로 한창기를 거론하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문화혁명가였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으리라. 이번 홍가이의 발표 중 흥미로웠던 것이 미학의 개념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용어인 칼로스, 아레테 등은 아름다움이나 미덕 등으로 번역되지만 결코 ‘아름답다’에 종속되지 않는다. 예컨대 영어 단어 ‘beautiful(아름다운)’은 라틴어 ‘billus’에서 유래되었다는데 이는 ‘예쁜’이라는 의미지만 정확히 ‘아름다움’과 같지는 않다. 내가 평생 화두 삼고 추적해온 남도의 ‘귄’이 바로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한창기를 ‘귄의 미학자’이자 ‘귄의 실천가’로 호명한다. 홍가이는 야나기무네요시와 고유섭의 시선을 받아 한창기를 담학(淡學)에 비유하였다. 내가 김진석과 김지하를 빌어 ‘기우뚱한 아름다움’ 곧 ‘허튼미(散美)’를 주창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어머니의 흥그레타령과 남도사람들의 귄에서 남도의 미학을 규명하고 장차 이를 한국의 미학으로, 다시 동아시아의 미학으로 재구성해나가는 힘을 그이에게 얻는다. 물론 나야 그의 신들메도 감당치 못할 땔나무꾼이지만 앞서 내신 길을 어찌 사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창기야말로 민속학자인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남도인문학팁

한창기(1936~1997)의 생애



1936년 전남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지곡마을에서 한귀섭과 조이남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앵보, 괴보로 불렸다. 1945년 벌교읍 남초등학교, 1951년 순천중학교, 1954년 광주고등학교, 195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1961년부터 1967년 의정부 미팔군 영내에서 귀국용 비행기표를 팔고 영어 성경책 세일즈맨을 했다. 여기서 발견한 브리태니커사전에 착안하여 본사에 편지를 보냈고, 1968년 엔싸이클로피디어 브리태니커 코리아가 설립되었다. 1970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브리태니커에서 번 돈으로 1971년 ‘재단법인 언어교육’을 설립하여 이사장을 맡았다. 1972년 외솔회 회원, 브리태니커 사무실 안에 있는 벤튼회관에서 민화 전시회를 열고 ��한국 민화의 멋��(저자 조자용 에밀레박물관 관장)을 펴냈다. 최초의 민화 전시회였다고 평가받는다. 1973년 브리태니커 판소리 감상회를 시작으로 1978년까지 100회를 개최했다. 1974년 한글학회 공로상 수상, 1976년 월간 문화종합지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했다. 1977년 전통 방법으로 만든 잎차(녹차)와 찻그릇을 보급하기 위해 잎차사업소를 열었다. 1978년 출판사 <뿌리깊은나무>를 설립하고 대표를 맡았다. 1980년 8월호를 마지막으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뿌리깊은나무��가 폐간되었다. 1981년 뿌리깊은나무 민중사자서전 씨리즈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1982년 뿌리깊은나무 판소리가 출판/출반되었다. 1984년 월간 여성종합지 ��샘이깊은물��을 창간하였다. 1989년 ��뿌리깊은나무 산조전집��, ��뿌리깊은나무 한반도의 슬픈소리��, ��해남강강술래��를 출판/출반하였다. 1990년부터 1992년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다섯바탕��을 출판/출반하였다. 1994년 ��국어문법(저자 서정수)��, 1995년 ��춤추는 최승희(저자 정병호)��를 발간했다. 1997년 61세 지병으로 별세, 벌교 고읍 선영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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