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조재호>막다른 골목, 위기, 다른 세상 '서이초 사건'
조재호 무등초등학교 교사
입력 : 2024. 07. 14(일) 17:38
조재호 교사
“지금까지 많은 해결책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생산자들이 실천자들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혁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고안은 실천자들의 사고방식의 이해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윗글에서 ‘생산자’들은 교육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교육부와 교육청 행정가다. 실천가들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교사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사들의 사고방식을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펼치기 때문에 문제라는 너무나 당연한 지적이다. 이 글은 광주교육대학교 초등학교 문화연구소가 펴낸 ‘초등교사 되기: 초등교사의 직업사회화(2005)’라는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글쓴이는 이정선 광주시교육감님이다.

지난해 7월18일, 젊은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교사들은 ‘검은 점’이 됐다. 9월2일은 사상 초유의 ‘공교육 멈춤의 날’이었다. 징계를 위협했던 교육부와 교육청도 어쩔 수 없었다. 올해 초, 순직이 인정됐다. 아동학대와 관련한 법률도 개정하고 있다. 교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진 듯하다. 하지만 ‘무엇이 바뀌고 있나?’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정말 새로운 길이 생기고는 있는 것일까? 초등교사로서 ‘검은 점’ 일원으로 떠오르는 어휘들을 같이 나누고 싶다. ‘막다른 골목’, ‘위기’, ‘다른 세상’.

지난해 수많은 교사들은 ‘막다른 골목’의 우울감을 경험했다. 송원재 선생님의 저서 ‘교사가 아프다’가 묘사하는 선생님들의 상태가 그렇다. 학교는 민원 공화국에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고, 누구도 보호막이 돼 주지 않는다. “애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대요. 선생님이 책임지세요” 부터 “아이가 수업을 방해해도 연락하지 마세요. 난 할 만큼 했어요”라는 민원을 받을 때 교사들은 막막하다. 고소·고발이 난무하는데, 관리자는 보이지 않는다. ‘무책임한 교장’과 ‘무서운 학부모’의 조합이 된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이야기가 바람을 통해, 언론을 통해 귀에 들어온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막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마치 미로에 갇힌 실험용 쥐가 무기력을 학습하듯.

‘위기’감은 대한민국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난다. 많은 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위기를 말한다. 그런데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알게 됐다. 국내에서 제일 부유한 강남부터, 전남 땅끝마을까지. 사연은 다르지만,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또한 이것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적 일임을.

기후 위기를 단일 국가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듯, 교육위기는 인류적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선진자본주의 사회일수록 저출생·고령화와 더불어 교육의 위기와 교권 붕괴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왜일까? 이는 공교육이란 사건의 지평과 자본주의란 사건의 지평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원리는 투입과 산출의 합리적인 분배에 의한 성과를 요구한다. 그러나 공교육에서는 그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운영된다. 늦게 배운 어린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청소년, 거기다 자기 삶마저 통제하기 힘들어 아이를 방치하는 학부모에게 오히려 더 많은 감정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공교육이다.

‘다른 세상’. 교육감님은 어느 세상에 살고 계실까? 태블릿을 나눠주고 스터디카페를 지어주고 선심성 학부모 연수를 해줘서 전국 1등 교육청이 된 세상. 하지만 정작 현장의 교사들은 마치 카프카의 성과 같이 들어갈 수 없는 세상. 교육감님이 연구자 이정선 교수로서의 관점을 회복하시길 바란다. 교사의 삶과 소통하지 않은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단 한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광주 교사들이야말로 실천하고 싶다. 그러려면 남아도는 태블릿이 아니라 더 행복한 교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광주 교사들이 맞이한 서이초 1주년은 너무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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