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21) 예술가들의 브랜딩 전략
충격적 작품세계와 마케팅 결합 현대미술 스타 데미안허스트||트레이시 에민·제프 쿤스 등 개성과 홍보 적극 활용해 작가로 성장||피카소·달리·워홀 등 대가들의 ‘자기 PR’도 눈길
입력 : 2021. 02. 14(일) 14:09

데미안 허스트 작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에서 불가능한 물리적 죽음' (1991). 데미안 허스트 홈페이지

1988년 7월 런던 남동부 도크랜드 항만청사의 빈 창고에서 도발적이고 불경스러운 전시가 열린다. 꾸깃꾸깃한 금속 더미, 총탄에 머리가 골절되는 것을 보여주는 라이트 박스, 흙더미에서의 나체 퍼포먼스 등 모호함이 난무하는 미술학도들의 아마추어 전시였음에도 이목을 끌었다. 영국 현대미술 아이콘이 된 'yBa'(young British artists)의 태동인 '프리즈'전이다. 골드스미스 대학 재학 시절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기획했고 동급생이거나 졸업생이었던 사라 루커스(Sarah Lucas), 게리 흄(Gary Hume) 등 16명이 참여했다.

당시 23세에 불과했던 허스트는 영리하게도 흥행을 위해 공략할 이들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전시회에 불러들이고자 치밀하게 준비했다. 영국 현대미술 부흥의 신호탄이 된 그 역사적인 현장에는 유명 광고인이자 컬렉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가 찾았고 그들의 작품을 수집하면서 10여 년 후 'yBa'를 세계에 알린 '센세이션'전을 열게 된다.

'yBa' 선두주자 데미안 허스트는 미술 문외한도 알만큼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의도적으로 악평과 혹평까지도 홍보에 활용할 정도로 사업가적인 기질과 전략이 뛰어난 그는 일명 '노이즈마케팅'의 대가라 할 수 있다. 허스트는 개성과 브랜드가 예술성 못지않게 작가로서 성공하는데 기반이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학창시절 존경했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을 새롭게 해석하고 자신 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1990년 대형 유리 상자 안에 죽은 소의 머리를 넣고 구더기와 파리의 생애를 보여준 '천 년'을 시작으로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절여진 죽은 동물들이 나오는 '전매특허' 작품들이 잇따라 나오게 된다. 유리 상자 안에 양을 진열한 '양떼로부터 떨어져서'와 반으로 갈라진 소와 송아지가 담긴 '분리된 엄마와 아이' 작품은 1995년 터너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줬다. 급기야 2007년에는 백금으로 주형을 뜬 18세기 해골에 약 1.1캐럿의 다이아몬드 8,600여 개가 촘촘히 박힌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제작했는데 이는 710억 원 판매가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삶과 죽음, 미와 공포를 다루는 그의 충격적인 작품 스타일과 미술 시장 및 자본과 결탁한 마케팅 전략이 맞물려 미술계 스타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프리즈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yBa' 대표주자인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경우도 허스트 못지않게 자기 과시형이자 대범한 기질을 지녔다. 30세 경 본인의 잠재적인 창의력에 투자를 요청하는 편지를 150여 명에게 보냈던 에민이다. 그녀의 진취성에 회신한 이 중 영국 대표 갤러리 '화이트큐브'를 오픈한 제이 조플링(Jay Jopling)이 있었다. 이 인연으로 1993년 화이트큐브가 개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민은 '나의 회고전'이라는 파격적인 개인전을 갖게 된다. 이후 에민은 빈 술병, 스타킹, 이불 등이 널브러진 지극히 사적인 '나의 침대' 설치작품으로 1999년 터너상 후보에 오르는 등 유명인사로 자리 잡게 된다.

미국에서는 제프 쿤스(Jeff Koons)가 키치적인 작업 방식 아래 '셀프' 홍보와 사업적 수완을 버무려 예술가로서 입지를 포지셔닝했다. 한 때 금융업계 선물중개인으로 일했던 제프 쿤스는 앤디 워홀(Andy Warhol)처럼 공장 같은 작업장에서 스테인리스 등의 재료를 사용해 매끈한 대형 조각품을 제작했는데 금속풍선처럼 보이는 일련의 작품들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미국의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의 경우는 대중과의 교감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1996년 18세 나이로 뉴욕으로 간 맥긴리는 도시 청춘들을 앵글에 담았고 몇 년 후 소호의 버려진 갤러리에서 첫 번째 사진전을 갖는다. 당시 직접 만들어 판매한 수제 작품집이 계기가 되어 25세 나이로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최연소 작가가 되었다. 야생마처럼 벌거벗고 뛰어 다니는 앵글 속 청춘 남녀는 자유와 해방, 일탈 등의 위태로움과 긴장감을 야기하면서 동시대 미감과 감성을 자극한다. 독일 X-세대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즈(Wolfgang Tillmans) 이후 가장 주목받는 사진작가로 평가받는 맥긴리는 스튜디오 조명을 쓰거나 디지털 보정을 활용하는 솔직함으로 예술에 대해 재정의하는 중이다.

이처럼 자기 양식화를 기반으로 브랜딩에도 주력한 이들에게 벤치마킹 대상이 된 '홍보통' 선배들이 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앤디 워홀도 직감적으로 브랜딩에 능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청운의 꿈을 안고 간 피카소가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대학생 몇 명을 고용해 파리 시내 화랑들을 돌면서 피카소 그림을 문의하게 한 일화는 그의 지략을 가늠케 해준다. 홍보에 일가견이 있던 달리 또한 콧수염 등의 튀는 외모와 언어, 행동을 수단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초현실주의라는 예술적 토대 아래 능숙한 언론플레이로 유명세를 얻게 됐다. 어디 이뿐이랴. "미래에는 예술가의 명성이 예술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이라는 소신으로 워홀은 은백색 가발에 창백한 피부로 자신을 신격화해나갔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의 '서양미술사' 서문에 나온 첫 문장처럼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예술을 배태하고 예술로서 존재를 입증하고자한다. 예술가로서 실존의 확인은 숙명처럼 처절하고 양가적이다. 뜨거운 산고 속에서 예술이 태어나고, 차가운 셈법 아래 예술은 그 생명력을 연장해나간다. 그 '연장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지언정, 목표와 성취 지향적인 삶의 태도는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필수 요소는 아닐까.

데미안 허스트 작 '분리된 엄마와 아이', copy 2007(original 1993). 테이트 홈페이지 제공

트레이시 에민 작 '나의 침대'(1998). 테이트 홈페이지

제프 쿤스 작. 'Balloon Monkey' (2006-2013). 제프 쿤스 홈페이지 제공

라이언 맥긴리 'Pretty Free' 전시 전경(2020). 라이언 맥긴리 홈페이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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