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명장> "우리 민족의 얼 담긴 전통부채 명맥 이어가겠다"

‘충장로의 보물’ 동구의 명인·명장을 찾아서
25. 김명균 청라공예사 대표
‘단선’ 제작 부친 이어 2대째
전주서 ‘합죽선’ 기술 연마해
동명동 청라부채박물관 운영
저탄소 각광, 부채 가치 상승
“전통부채 전시관 마련이 꿈”

김명균 청라공예사 대표는
김명균 청라공예사 대표는 "옛날 여름에 손님이 찾아와 자리에 앉으면 부채 하나 내어드리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었다"며 "소박하면서도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있는 전통부채 공예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명인이나 명장과 같은 칭호는 없다. 1년 365일을 부채 만드는 데에만 전념하다 보니 다른 일들은 살필 짬이 나질 않았다고 한다.

선풍기와 에어컨의 등장으로 여름날 그늘에 앉아 느긋이 더위를 식혔던 부채의 정취는 이제 쉬이 찾아볼 수 없지만, 김명균 청라공예사 대표는 40여년간 꾸준히 전통부채를 제작해 왔다.

그에게 부채는 손에 쥐고 흔들어서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덜어내는 데 쓰는 물건을 넘어 우리 민족의 얼과 생활상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공예품이기 때문이다.

광주 유일의 전통부채 제작자로 광주 동구 동명동에 터를 잡고 청라공예사와 청라부채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명균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명균 청라공예사 대표가 전주에서 합죽선 기술을 전수받으며 함께 물려받은 100년 이상 사용된 부채 작업대를 소개하고 있다.
김명균 청라공예사 대표가 전주에서 합죽선 기술을 전수받으며 함께 물려받은 100년 이상 사용된 부채 작업대를 소개하고 있다.

● 2대째 전통부채 제작… 합죽선 기술까지

구례에서 부채 공예를 하던 선친 밑에서 자연스럽게 부채살과 종이를 벗삼아 자랐다.

특별히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항상 '단선'을 전문적으로 만들던 아버지를 따라 엉덩이를 붙이고 부채를 만지다 보니 어느새 단선 만드는 기술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전통부채는 크게 접히지 않는 부채인 '단선'과 접을 수 있는 부채인 '접선'으로 나뉜다. 김 대표는 일찍이 아버지 밑에서 단선 기술을 익히고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나섰다"면서 "단선 기술은 아버지께 배웠으니 접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주로 가서 2년 정도 합죽선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대나무의 겉대 두 쪽을 맞붙여 살을 만들었다고 해 이름 붙여진 합죽선은 접선 중에서도 가장 품격이 높은 부채로 알려져 있다.

김 대표는 "합죽선의 대는 속대가 아니라 대나무 껍질을 이용해서 만든다"며 "대나무 껍질이라는 것이 원래도 잘 깨지는 특성이 있어서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운데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전통부채로 배우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번 앉아서 합죽선을 만들기 시작하면 화장실 갈 때, 밥 먹을 때 말고는 일어설 수가 없다. 그때는 엉덩이가 들썩거리면 배울 자격이 없다고 내쳐지던 때였다"며 "대부분 3일이면 다 도망간다고 하는데 저는 아버지께 배운 것이 있어 그런지 기를 쓰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김 대표는 정교하게 깎은 겉대와 속살이 있고 속살 위에 종이를 발라 만든 접선의 경우 일본, 중국 등에서도 오래전부터 사용해왔지만 한국에 기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채는 본래 더위를 쫓는 목적을 가진 생활용품이었지만, 점차 의례용이나 장식용으로도 활용되면서 우리 일상과 아주 밀접한 물건이 됐다"며 "과거급제 시나 혼례 때 차면용(얼굴을 가리는 용도)으로 쓰이기도 했고, 장례식, 무속신앙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부채로, 단지 부채질을 한다는 용도보다는 선조들의 삶이 녹아있는 물건이다"고 전했다.

김명균 청라공예사 대표가 전통부채 제작에서 한지가 밀리지 않도록 나무살과 고정하는 답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명균 청라공예사 대표가 전통부채 제작에서 한지가 밀리지 않도록 나무살과 고정하는 답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광주 유일 전통부채 공예인으로 자리매김

전주에서 합죽선 기술을 연마한 김 대표는 '광주에는 합죽선 만드는 이도 없고 국악인과 미술작가들이 많아 너 하나는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스승의 말을 따라 광주에 터를 잡았다.

합죽선의 경우 국악인들은 물론, 한국무용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주 수요층으로, 예향의 고장인 만큼 합죽선을 필요로 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많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호기롭게 광주로 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경험이 부족했던 김 대표의 부채를 찾아주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몇 년간은 광주공원에 돗자리를 펼쳐 놓고 어르신들에게 부채를 팔기도 했다.

김 대표는 "그렇게 한 10년 정도를 기술적으로 경험도 쌓고 판로 확보를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저만의 인프라가 구축됐다"며 "그래봤자 현상 유지나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뻤다"고 말했다.

20년이 지나자 가만히 있어도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울 인사동의 필방부터 전국 대도시에는 모두 한곳씩 거래처가 있을 정도다.

그는 "개수를 세기는 어렵지만 코로나 있기 전에는 1년에 단선은 1000여개, 합죽선은 600~700개 정도를 생산해 냈다"며 "기계로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수작업이기 때문에 그정도 물량을 맞추려면 사실 1년 내내 부채만 만들고 있어야 한다"고 농담을 던졌다.

특히 여름을 앞둔 4월부터 5월까지는 각 거래처들에서 주문량이 가장 많은 시기로 여름 장사가 끝나면 한숨을 돌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김 대표의 부채는 온라인을 통해서도 판매되고 있다.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면서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을 직접 주문받아 제작한다.

그는 "일반적인 분들은 부채를 거의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선물용이나 또 직접 사용하려고, 나만의 부채를 갖기 위해 주문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전했다.

김명균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광주 동구 동명동 청라공예사 내 작업실. 청라부채박물관과 함께 운영되고 있는 청라공예사는 곳곳에 전통부채들이 전시돼 있다.
김명균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광주 동구 동명동 청라공예사 내 작업실. 청라부채박물관과 함께 운영되고 있는 청라공예사는 곳곳에 전통부채들이 전시돼 있다.

● "전통부채 의미 지켜나가고 싶어"

김 대표는 현재 판매하는 부채의 쓰임새는 거의 정해져 있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전통부채의 가치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기를 소망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친환경, 저탄소 등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채에 대한 관심도 미약하나마 커지고 있다.

김 대표는 "선풍기와 에어컨이 공간마다 놓여있는 세상에 부채가 더위를 식히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하긴 어렵지만, 요즘 저탄소가 떠오르면서 거리에서 부채를 나눠주며 친환경에 대한 홍보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동구 마을공동체지원사업으로도 선정돼 매주 금요일 12명의 지역 주민들을 모아놓고 부채 만들기 체험도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체험활동 자체가 전통을 지켜나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너무 어려운 과정은 할 수 없지만, 종이에 살을 붙이고 모양을 만드는 단선 제작만 해도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참 반응이 좋다"며 "전통부채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지속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다행히 이런 김 대표의 마음을 이어갈 후계자도 마련돼 있다. 현재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은 고맙게도 아버지가 평생 걸어온 길은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뜻을 항상 전해왔다고 한다.

어린시절의 자신처럼 어깨너머로 부채 만드는 기술을 보고 배워온 아들은 지금도 명절이나 휴일이면 종종 아버지를 찾아 똑같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부채 만드는 것을 거든다.

그는 "지금은 제가 든든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본인은 생업에 종사하고, 후에 아버지가 더이상 부채를 만들기 어려워지실 때는 본인이 꼭 가업을 이어받겠다고 했다"며 "고맙기도 하고 그래도 광주에서 제가 열심히 터를 닦아놓았으니까 아들이 물려받아 할 때는 그래도 저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마지막 꿈은 전통부채 박물관을 조성하는 것이다. 현재 청라부채박물관에도 다양한 전통 부채가 전시돼 있지만 충분히 않은 공간에 2m50㎝가 넘는 대작은 펼쳐놓은 공간이 없어 둘둘 말린채 먼지가 쌓여가는 실정이다.

김 대표는 "전통부채 공예 특산지로 잘 알려진 나주나 전주에서는 지금도 저에게 좀 와주었으면 하는 뜻을 비춘다"며 "그래도 광주에서 터를 잡은 만큼 끝까지 광주의 부채 공예가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금도 물론 공예를 하면서 이렇게 작게나마 전시 공간도 마련하고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것에 감사하지만, 그동안 제가 만들고, 수집해온 전통부채를 잘 보여드릴 수 있는 전시관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