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74-1> '자립=고립'…" 자립준비청년의 암담한 현실

엄격한 통제에 자립 결심했지만
정착금 500만원만 지급… 막막
집 구했어도 외로움·불안감 엄습
경제 지원과 교육·상담 함께 돼야

경기 시흥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청자기('청'년들의 '자'립 이야'기') 자립활동가 모임이 열리고 있다. 뉴시스
경기 시흥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청자기('청'년들의 '자'립 이야'기') 자립활동가 모임이 열리고 있다. 뉴시스

'떠밀리듯' 어른이 돼야 하는 자립준비청년의 자립은 불안에서 좌절로, 좌절에서 고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열여덟 어른' 그들이 처한 씁쓸한 현실이다.

김동현(가명·22) 씨. 그가 시설에 들어간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새아버지'의 학대 때문이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나 자신을 '아버지'라 칭한 남자는 모든 경제적 지원을 뚝 끊었다. 용돈은커녕 아르바이트하지 않으면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정당한 항의는 폭언과 폭력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집은 든든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썩은' 울타리일 뿐이었다.

17살이던 김씨에게 시설이 허락한 시간은 고작 '1년'이었다. 시설 선생님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가 종료되니 강제 퇴소해야 한다고 했다. 시한부 선고처럼 들렸다. 보호 연장을 위해 김씨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시설의 엄격한 통제와 규율 속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지난해 겨울 자립을 결심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는 까맣게 몰랐다.

하루 만에 어른이 된 김씨의 손에는 자립정착금 500만원만 쥐어졌다. 그게 끝이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집은 어디서 구하고, 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하던 '의식주'가 한순간에 낯설어졌다. 그제야 김씨는 자립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시설 밖에서 마주한 첫 번째 '좌절'이었다.

그룹홈에서 지내던 정아름(가명·21) 씨에게도 '좌절'의 시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룹홈 맏언니였던 정씨는 누군가 자립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조언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받은 경제 교육이라곤 '용돈 기입장 쓰기'가 전부였다. 그런 정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동네로 가 아무 집이나 얻는 것뿐이었다. "선생님과 상의도 없이 먼저 집을 구했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집을 구할 땐 선생님이랑 상의해야 한다'는 것조차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다행히 정씨는 뒤늦게나마 LH 공공 임대주택에 지원받아 들어갔다. 정씨의 사정을 안 선생님이 계약을 도와줬다. 비로소 정씨는 처음으로 아늑하고 깨끗한 '집'을 얻었다. 하지만 정씨의 집에 들여진 것은 예쁜 식기도, 포근한 이불도 아닌 외로움과 불안이었다.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제 진짜 혼자인가' '내가 뭘 할 수 있기나 할까' 정씨는 이 물음들에 꼬박 1년을 갇혀 살았다. 이후부턴 외로움을 넘어 고립이었다.

'수치'에도 그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담겼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가 2020년 지역 내 보호아동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보호아동의 자립 준비가 어려운 이유는 △자립에 대한 두려움(31.8%) △경제적 부담(26.1) △자립 정보 부족(16.5%) 순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 보건복지부의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 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 3104명의 자립준비청년 중 절반이 '죽고 싶다'는 자살 충동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그들이 처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김동현 씨는 "실질적 교육 부재로 많은 보호아동이 자립 수당이 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라며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다행인 거다. 어쨌든 자기가 힘들다는 걸 알리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시설에서 나온 아이들은 '죽고 싶다'는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 지난달 광주에서 안타까운 선택을 한 청년들도 다르지 않았을 거다"고 했다.

그나마 김씨와 정씨는 수십번의 좌절과 극복을 반복한 끝에 지금은 '자립준비청년'이 아닌 완전한 '자립청년'이 됐다. 이제 그들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바람개비 서포터즈' 멘토링 활동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 닮은 보호 아동들의 자립 준비·사회 진출을 돕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 관계자는 "경제적 지원은 물론 자립준비청년들의 심리 안정·사회 적응을 위한 전반적인 교육과 상담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