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피안의 언덕에 솔씨 뿌려 거듭나는 재생의 장치

경상도 제비풀이 전라도 중천풀이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 씻김굿의 마무리곡서 경상도의 '대풀이'는 '제(비) 풀이'를 이르는 말.
중천(重泉)은 무엇인가? 땅속 깊은 곳에서 솟는 샘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저세상을 말한다.

2001년 진도 소포마을 상가에서 열린, 고 정숙자의 씻김굿 중 손님굿. 이윤선
2001년 진도 소포마을 상가에서 열린, 고 정숙자의 씻김굿 중 손님굿. 이윤선

"경상도는 대풀이요/ 전라도는 중천의 풀이란다/ 잔도 잔도 새로 속잎이 났네/에라 만수야 에라 대신이야/ 많이 흠향하고 평안히 돌아가소서"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 씻김굿의 대표적인 마무리곡이다. 시나위나 굿거리 연주를 하다가 당골 혹은 음악의 리더격인 누군가가 이 노래를 꺼내면 모두 합창하며 해당 거리를 끝내게 된다. 이 곡을 꼭 집어 이름을 붙인 예는 없다. 어떤 굿거리를 마무리하는 곡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나는 '갈무리조'란 이름을 쓴다. '갈무리'는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한다는 뜻의 순우리말이고 '조(調)'는 시가나 노래의 음수에 의한 리듬 단위라는 의미로 차용한 것이다. 부언하자면 하나의 굿판을 이루는 십수 개의 하위 굿거리들이 있다. 대개 열두 개 정도로 구성된다. 그 중 중요한 하위 굿거리가 '씻김거리'이기 때문에 통칭해 '씻김굿'이라 한다. 씻김굿은 남도문화권에서 통용되는 이름이다. 언제 누가 채록하여 굳어진 노랫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진도를 비롯한 남도 씻김굿에서 널리 불리고 있다는 점 분명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현장에 있는 이들은 물론 여러 연주가나 연구자들마저 내게 질문하곤 한다. 난감하다. 어쩌겠는가. 내 연구한 업보가 그러하니 해석을 내놓을 수밖에. 내가 대학에 있지 않아 학생들에게 코멘트 할 기회는 없지만, 내 테마 하나하나를 눈여겨 살펴봐도 좋을 것이다. 하나하나 모두 논문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2009년 명량해전축제 씻김굿 고풀이 장면, 이윤선
2009년 명량해전축제 씻김굿 고풀이 장면, 이윤선

무가(巫歌) 성조가(成造歌)와 민요 성주풀이의 교섭

'갈무리조'가 무가에서만 불려지는 것이 아니다. 성주풀이라는 민요로도 불려진다. 가사는 다른 듯해도 선율이나 장단의 진행이 유사하다. 상호 성조가에서 비롯된 노래이거나 적어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노래다. 성조(成造)는 일반적으로 성주(城主)라 부른다. 집을 짓는 행위의 과정이나 결과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집 짓는 일을 '성주올린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가에서 민요로 확대 재생산되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정설이다. 씻김굿에서 먼저 불리고 남도민요 성주풀이로 불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은숙의 「성주풀이 민요의 형성과 전개」라는 연구에 의하면, 무가에서 벗어나 민요가 독자성을 확보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어떤 시점부터 무가가 거꾸로 민요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는 뜻이다. 출처는 무가이되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므로 교섭 관계다. 민요 성주풀이의 대강의 가사는 이렇다.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드메뇨/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 솔씨 받어/ 봄동산에 던졌더니만은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도리 기둥이 되었네/ 낙랑장송이 쩍 벌어졌구나/ 대활련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이본들이 많아 가사를 통일할 수는 없다. 대개 위와 같은 유형의 가사가 보편적이다. 동리 신재효가 정리한 가사집에도 상이한 대목들이 나온다. 정병헌이 '김삼불본'과 '청계본'을 대조 분석하여 정리한 '신재효의 가사'라는 책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성주풀이 무가는 성주굿 일환으로 불린다. 가신신앙 중에서 으뜸이 성주신이다. 조상신과 연결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제석오가리'를 검색해보면 내가 집필한 항목들이 나오니 참고할 수 있다. 남도에서 성주신을 중심으로 하는 조상신, 농신이 제석오가리다. 제석단지, 성주오가리, 성줏단지, 조상단지, 신줏단지 등으로 불린다. 제석(帝釋)은 불교 전래 후 토착 신앙과 교섭되면서 구성된 신격이다. 자손의 점지나 출산을 도와주고 자손의 명과 복을 관장한다고 관념되는 가신(家神) 중 하나다. 바리데기 신화와 쌍벽을 이루는 당금애기 신화가 제석굿의 토대다. 하지만 진도씻김굿의 하위굿인 제석거리에서는 당금애기 서사는 생략되고 성주 청하여 집터 잡고 지경 다구고 재목 구하여 기둥, 서까래 집칸 등을 지어 산자들에게 벼슬과 재화 등의 복락을 주는 서사로 재편성되었다. 성주굿의 맥락은 전국에 널리 분포해있다. 동해안의 별신굿이나 제주도의 성주굿 등의 묘사가 비교적 섬세하다. 남도의 '갈무리조'가 제석굿에 포함된 성주무가에서 비롯된 노래임은 불문가지다. 지면상 세세한 설명은 차후를 기약한다. 다만 주목할 것은 성주 근본을 안동땅 제비원으로 설정하고 솔씨 하나 심어 장목으로 자라게 하여 집을 짓는다는 서사의 맥락이다. '갈무리조'의 배경이 제비원의 솔씨라는 점, 경상도와 전라도를 댓구로 비교하고 있다는 점 등 행간이 풍부하다.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구술문화는 본래 창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와전된다. '갈무리조'도 다르지 않다. 늘 견강부회를 의심하고 조심해야 하지만, 용어 자체보다 그 행간과 맥락을 좇아야 할 이유다. 관련 해석은 팁에 부기한다. 제비원에 대해서는 조현설의 '제비원'(민속원, 2021)을 참고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남도인문학팁

경상도 제비풀이 전라도 중천풀이

사설의 내드름이 '경상도는 대풀이요'다. '대풀이'가 뭘까? 경상도가 강신무(降神巫)권이라면 대잡이를 통해 강신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세습무권이다. 전형적인 세습무(世襲巫)권인 전라도 당골도 손대잡이(일반 굿 전반)와 왕대잡이(혼건짐굿 등)를 한다. 무당 본인이 공수하지 않고 다른 이를 활용할 뿐이다. 잇는 사설이 '전라도는 중천의 풀이'다. 댓구 형식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나무를 대입하는 것은 댓구에 어울리지 않는다. 민요 성주풀이는 물론 경상, 강원의 무가들을 종합해 결론만 말하면, 경상도는 제비풀이다. 성주 노래 자체가 제비원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안동 제비원과 강남 제비의 서사들이 교섭되어 오늘날의 노랫말을 낳았다. 맥락과 배경의 행간을 읽으면, '대풀이'가 '제(비)풀이'임을 알 수 있다. 후대에 와전하여 '제(비)'자가 강조되고 '비'가 곁음화 되었을 뿐이다. 경상도의 제비풀이와 전라도의 중천풀이를 상호 댓구로 배열한 것이 본래 작자의 의도로 보인다. 중천(重泉)은 무엇인가? 땅속 깊은 곳에서 솟는 샘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저세상을 말한다. 불교적으로는 삼천 대천세계로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다. '잔도 잔도'는 무엇일까? 진도 출신 신영희 국창의 남도민요 사설집을 보면, '잔등 잔등'으로 나온다. 잔등은 언덕의 남도말이다. 이승의 번뇌를 벗고 도달하는 피안(彼岸)의 본뜻이 언덕이고 강이다. 후대에 와전되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피안의 언덕 혹은 천도(薦度)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속잎은 발음 그대로 의미가 있지만, 성주를 노래하는 굿거리라는 점에서 '솔잎(松잎)'으로 봐야 한다. 제비원에 솔씨 심어 황장목 만드는 서사가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씻김거리에서 지금은 풀비(빗자루)를 쓰지만, 본래 영돈마리 씻는 도구는 솔가지다. '갈무리조' 자체가 성주풀이의 소나무와 친연성이 매우 높거나 후대에 그 빛이 바랬을 개연성을 말해준다. 솔씨로부터 성장하여 '집(成造는 몸의 확장이기도 하다)'을 이루는 서사를 나는 늘 주목하고 있다. 만수(萬壽)와 대신(大神)은 영생 혹은 재생을 희구하던 우리네 대표 캐릭터다. 만세받이, 대신맥이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나는 '갈무리조'를 이렇게 해석한다. "경상도는 제(비)풀이요 전라도는 중천의 풀이란다. 잔등 잔등에 새로 솔잎이 났네. 에라 만수야 에라 대신이야. 많이 흠향하고 평안히 돌아가소서" 피안의 언덕에 새로 솔씨 뿌려 황장목으로 거듭나는 재생의 장치가 행간에 녹아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짐작하겠지만 이 풀이를 통해 남도씻김굿의 마지막 거리인 종천(종천맥이)과 '등잔가세'의 '등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길을 열게 되었다. 내가 오래전 새롭게 해석했던 '다시래기'는 물론 씻김굿의 '갈무리조' 해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는 늘 당대의 해석에 의지해 재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