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맑으면서 탁하고 높으면서도 깊은 세계 '흰그늘'

흰그늘
판소리 수리성은 맑으면서도 탁하고 여리면서도 쇳소리 같은 성음.
그늘은 '그늘 깊고 곰삭은 소리' '한(恨) 따위에 갇히지 않는다.
김지하다 직조한 흰그늘 호명은 탁월시대를 관동하고 유무형의 공간을 포섭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천도교 대교당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 추모문화제에서 한국화가 김봉준이 제작한 김지하 시인 소상이 공개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천도교 대교당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 추모문화제에서 한국화가 김봉준이 제작한 김지하 시인 소상이 공개되고 있다. 뉴시스

"해모수와 사통한 뒤 버림받은 유화를 이상하게 여긴 동부여의 왕 금와가 그녀를 방에 가두었는데 햇빛(日光)이 비추니 몸을 이끌어 이를 피하고 해그늘(日影)이 좇아와 비추니 받아들여 이로 인해 잉태했고 하나의 알을 낳았다."

'삼국유사' 「고구려조」 주몽 탄생 기사를 김지하가 인용한 대목이다. 흰그늘이란 작명의 출처를 엿보게 해준다. 이렇게 설명한다. "햇빛(日光)과 해그늘(日影)이 분명히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병도는 각각 '햇빛'으로 번역했으니 '해그늘' 곧 흰 '그늘'의 깊고 무궁한 신화적, 신비적, 미학적 의미, 그 창조적 진화의 맥락을 전혀 깨닫지 못했음이다. 해그늘(日影)은 분명히 '흰 그늘'인 것이다. '흰 그늘'이 곧 오래되고 새로운 역수들, 바로 만사(萬事)라면 '흰 그늘'의 미학은 수련, 공부로 이를 알고 동시에 그 앎을 계시받는 것이니 이른바 '깨침'인데...(하략)" 이렇게 반문하기도 한다.

"흰 그늘의 미학!, 아마도 이 '흰그늘'이 우리 민족 신화의 창조적 상징이요 미학적 원형의 원형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하다. 이 대목은 김지하 특유의 단정적 선언이나 화법이 아니다. 위글 제목을 '흰 그늘의 미학 초(抄)'라고 달아둔 이유여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해그늘'을 '흰그늘'로 읽어낸 김지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디였을까? '모로 누운 돌부처'(1992)까지만 해도 흰그늘이라는 용어가 출현하지 않는다.

'김지하 평론선집'(2015)을 엮어낸 홍용희는 1999년 들어서야 흰그늘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고 술회한다. '흰'과 '그늘'을 띄어쓰기도 하고 붙여쓰기도 해서 일체 개념으로서의 키워드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어쩌면 비로소 지금부터 흰그늘 담론을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작명의 단서가 율려나 동학, 특히 우리의 전통음악과 판소리 따위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초기의 담시 「소리내력」으로 거슬러 오르는 맥락에 대해서는 따로 지면을 할애해 소개하겠다. 다만 내 상고하여 심중에 품는 것은 혼란스러운 작명의 배후와 표상의 실체들에 관해서다. 빛과 그늘을 '그저 햇빛'으로 오독한 이병도야 거론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흰그늘이라 이름 지은 김지하조차도 이 총체에 대해 자유롭지는 못한 것 아닌가 말이다. '흰(빛)'에 초점을 두었나 '그늘'에 비중을 두었나?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편중되지 않는 일체적 개념의 작명인 것인가? 그가 수도 없이 얘기한 카오스모스와 생명철학의 현전을 광범위하게 다룰 시간이 되었다.

흰그늘의 출처, 신화에서 판소리의 그늘까지

살아있는 사람을 비평하는 것은 완전하지 못하다. 이후의 생애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비석을 세우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으리라. 한 시대의 영웅이었다가 변절자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쓸쓸히 세상을 뜬 비운의 천재, 근자에 명을 달리한 김지하의 얘기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제 그의 사후이니 각양의 비평들이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호불호를 떠나 그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이 한 시대를 횡단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그와 인연이 거의 없다. 어떤 하루 몇 명 지인들과 해남의 서동사 탐방에 동행하였던 것 외에는 주로 글을 통해 그와 만났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나다니던 시절이고 정신적인 트라우마 어쩌고 하던 소문이 나돌고 있던 때였다. 감옥으로부터 얻은 자유에의 의지가 이른바 '죽음의 굿판' 후 또 다른 형국으로 전개되던 시절이었다. 내가 김지하를 높이 여겼던 것은 그의 시학적 혹은 철학적 담론의 키워드를 율려나 동학, 판소리나 각설이타령 등에서 추려냈다는 점에 있다. 식자층들이 입에 달고 사는 서구의 이름난 누구입네 시대를 관통하는 이론입네 따위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른바 우리 것 속에서 의미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그의 선한 의도를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판소리에서 말하는 '그늘'이란 호명은 '삼국유사'의 '해그늘'을 상속하는 미학적 실체라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물론 판소리에서 말하는 그늘의 본래 의미는 '한(恨)'이다. 하지만 '한'에 마냥 갇혀 있지 않다. 예컨대 큰 나무 그늘이라 함은 부정적 언술이 아니다. 시선의 배경에는 작열하는 땡볕이 있고 근경에는 그 햇빛의 직설을 피해 해그늘로 숨어든 은유 혹은 환유들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가객이라야 '울창한 그늘'이 발견된다는 언설이 왜 나왔겠는가? 꾀꼬리같이 맑은 노래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도 목이 쉰듯한 혹은 성대 결절의 탁한 소리에 무릎을 탁치며 '옳거니 바로 저 소리야!'라고 하는 소리의 세계, 이것이 판소리의 그늘이다. 내 학문의 모티프도 사실은 민요와 판소리의 시김새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시김새는 단순히 음을 장식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늘을 직조하는 철학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 생태적 배경에 남도가 있다. 시김새의 동사형이 '삭이다'라고 주장한 것이 김지하다. 이 소리의 꼭대기점에 천구성이 있다. 귀명창만 되어도 내 의도가 무엇인지 금방 이해한다. 맑으면서 탁하고 높으면서도 깊은 세계가 사실은 흰그늘의 실체다. 판소리에 관한 한 그렇다. 김지하가 말했던 카오스모스 즉 신령한 카오스적 코스모스라고 할 수 있다. 천구성은 판소리목에 알맞게 타고 태어나 하청과 상청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재주를 말한다. 수리성은 맑으면서도 탁하고 여리면서도 쇳소리 같은 성음을 말한다. 이 성음이야말로 판소리 미학의 정점이다. 김지하도 여러 차례 판소리의 수리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삼국유사의 해그늘에서 얻은 착상과의 선후 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판소리의 수리성에 기대어 '흰그늘'이란 용어와 개념을 만들어 냈을 것임이 틀림없다. 판소리의 그늘은 남도 사람들의 표현대로 '그늘 깊고 곰삭은 소리'이기 때문에 '한(恨)' 따위에 갇히지 않는다. 평생 한의 구조를 분석했던 천이두가 한과 흥을 더불어 설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지하 시인이 타계한 지 몇 달 지났다. 공과가 새롭게 조명되거나 비판되겠지만 그가 직조한 흰그늘이란 호명은 탁월했다. 시대를 관통함은 물론 유무형의 공간을 포섭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생각된다.

남도인문학팁

빛을 품은 그늘, 해를 품은 달

흰그늘은 문자 그대로 하얀 그늘이다. 댓구를 굳이 만들어보자면 '검은빛' 정도 될 것이다. 빛을 품은 그늘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말이고, 대조된다는 점에서 반대의 말이다. 상생과 상극의 운행이라고나 할까. 어떤 대칭의 댓구로도 어울릴 만한 키워드가 흰그늘이다. 다른 것은 모르겠으되 적어도 판소리에 관한 한 그렇다. 김난희는 「김지하 문예이론에 나타난 숭고의 미학적 특성」에서 흰그늘을 지기일원론(至氣一元論)으로 풀어냈다. 지기(至氣)는 우주의 근본적 실재인 '한울님'의 원기(元氣)를 말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천지의 근본이 자기의 모든 능력에서 발생 진화하였으며, 이것이 현상계에 와서는 안으로 영적 방면이 되고 밖으로 물질적 방면이 되었다는 천도교의 우주관으로 풀이한다. 오행의 질서로 보면 상생보다는 상극에 가깝다. 한을 극복하여 흥이 생성된다든가, 한바탕 오열하여 극한의 슬픔을 넘어서는 따위가 그러하다. 그래서일까. 오는 8월 27일 김지하문화제추진위원회에서 조촐한 추모식을 마련한다. 장소는 목포 소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나도 운영위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다. 그의 곡절 많은 공과를 묵상하며 우리 음악의 율려와 주역을 전회(轉回)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싶다. 흰그늘 담론을 좀 더 확장해가는 것이 나 같은 땔나무꾼들에게 주어진 책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