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71-2> "학급당 학생 수 축소, 교육의 질 높이는 게 우선"

■'만 5세 입학' 반대 이유
“발달단계 고려 않은 졸속 행정”
개편 첫 해 40만명… 경쟁 과열
“돌봄 부담… 지금도 교실 부족”
2024년 시범, 교육청 수용 주목

예비 국공립 유치원 교사연대가 3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교육청 앞에 트럭 전광판을 설치하고 '만 5세 조기취학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예비 국공립 유치원 교사연대가 3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교육청 앞에 트럭 전광판을 설치하고 '만 5세 조기취학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유아 발달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다.' '교육 격차 해소는 말뿐,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할 정책이다.' '조기입학은 학부모들의 돌봄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만 5세로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낮추는 학제 개편 움직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다. '공론화'는 물론 '폐지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진화에 나선 정부의 움직임에도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유아·보육 통합이 우선돼야"

교육계의 공통적인 주장은 '유아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동의 발달 속도가 빨라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초등학교 교육을 받을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가 2019년 시행한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모순적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강미희 한국유아교육학회 광주전남지회장은 "'누리과정'을 시행한 이후 아이들은 발달 특성에 적합한 환경 속에서 능동적으로 놀이에 참여하며 잘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이 유아 교육의 최상의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만 5세 취학'은 여러 가지 논란만 가중시킬 뿐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 불필요한 정책"이라면서 "신체 발달이 우수하다거나 학습 능력이 좋다는 이유로 함부로 학급을 올릴 수 없는 것처럼, 유아도 발달이 빨라졌다고 해서 조기입학을 시킬 수는 없다. 수업 시간 동안 신체 움직임을 장시간 통제당하고, 한글을 따라 쓰는 등의 교육 방식은 유아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강 지회장은 "현재도 '만 5세 기준' 조기입학이 가능하지만, 많은 아이가 학교생활, 교우 관계 등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조기 입학생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미 부작용이 드러난 정책을 뜬금없이 전면 시행하겠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조기 입학생 수는 2009년 9707명에서 2021년 537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전체 입학생 중 차지하는 비율도 0.1%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해마다 조기 입학생 수가 줄어드는 시점에 '만 5세 취학'을 추진하는 것은 정책의 목적과 효과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주된 여론이다.

강 지회장은 "유아 교육의 더 발전적인 방향을 논한다면 입학 연령을 낮추는 것이 아닌, 학급 당 유아 수를 축소하고, 유아 교사 자격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등 유보통합(유아·보육 통합)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 사교육 과열…교육 불평등 야기

일각에선 '교육 격차 해소'라는 제도의 취지와 달리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통상 학부모들은 학교 입학 시기에 맞춰 선행 학습을 시키는데, 입학 연령이 낮아지면 사교육 시기 또한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근거 있는 주장'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성현 전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부모들이 '조기 사교육이 성행할 것이다'고 우려하는 것은 나름대로 타당성 있는 주장이다. 현재 유아의 사교육은 학업적 측면보다 돌봄을 위한 목적이 크기는 하지만, 목적을 불문하고 사교육의 시작 연령이 낮아지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과도기에 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해 입시·취업 경쟁이 과열될 우려도 있다. 현재 정부는 '2025년부터 매년 25%씩 입학 연령을 낮추는 방안'을 가장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2025년에는 2018년생과 2019년 1~3월생 약 40만명이 함께 입학한다. 기존보다 8만여 명 늘어난 수다.

반대로 학제 개편이 끝나는 2029년에는 취학 대상이 30만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학령인구 절벽 위기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차 교수는 "학생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 입시·취업 등의 경쟁과열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또, 학제 개편이 끝난 후 학령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면 학교, 교사 등의 수도 줄여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반발도 심할 것이다. 정부는 여러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해 대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지금도 돌봄 수요 벅찬데"

학부모들의 돌봄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늦은 오후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유치원과 달리 초등학교 저학년은 오전 수업을 마친 뒤 귀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초등학교 1, 2학년에 대해서는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을 보장할 계획"이라고 응수했지만, 교육단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입을 모았다.

김재옥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장은 "수완지구 등 인구가 많은 곳에 있는 학교는 교실이 부족할 정도로 돌봄 수요가 많다. 지금도 돌봄 수요를 소화하기 벅찬데, 매년 입학생을 25%씩 늘려놓고 이들의 돌봄을 모두 보장하겠다고 하는 것은 학교 현장을 전혀 모르는 발언이다"면서 "부족한 돌봄 교실을 확충하려면 운동장을 없애야 할 판인데 정부는 세부적인 계획 없이 '무조건 해주겠다'는 식의 즉흥적인 답변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비판 여론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해마다 1개월씩 12년에 거쳐 입학 연령을 앞당기는 방안 △초등 내에 유치부(K) 과정 추가 △초등학교를 13년 과정으로 하는 방안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 수습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한편, 교육부가 내년 학제 개편 시안을 마련하고 이를 수용한 교육청에서 2024년 시범사업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각 시·도교육청이 지역 학부모들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지도 주목된다.

광주시교육청은 관계자는 "아직 학제 개편에 대해 공문서로서 전달받은 사항은 없다. 학부모, 전문가 및 관련 단체와의 논의는 교육부가 주관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청 차원에서 (논의, 의견 수렴 등) 계획된 건 없다"고 밝혔다.

전남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의 학제 개편 발표는 교육청과 전혀 사전 협의가 없었던 내용이다. 교육청이 파악하고 있는 건 언론을 통해 나온 내용이 전부"라면서 "학제 개편 추진 전에 관계자들과 충분한 소통·논의가 필요하고, 유·초등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