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 5·18 진실 고백을"…살아남은 신군부 입 여나

'주요 신군부' 이희성·황영시·정호용만 생존
1980년 당시 학살 직접 책임…"고백하라"

5·18민주화운동 전후 시민을 학살하고 헌정 질서를 유린한 신군부 정권 찬탈의 주역 전두환(90)씨가 진실 고백 없이 숨지면서 불법 국가 폭력에 함께 가담했던 이들의 증언에 눈길이 쏠린다.

5·18 유혈 진압의 핵심 책임자이자 신군부 대표 인물인 전씨와 노씨가 진실공방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남은 이들만큼은 하루 빨리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8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5·18 조사위는 '5·18 학살과 인권 유린 책임자'중에서 신군부 중요 인물 5명(△전두환 국군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중앙정보부장 △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정호용 특전사령관)에 대한 대면 조사를 추진해왔다.

최근 숨진 전씨·노씨를 제외한 3명은 5·18 당시 전후 군 주요 보직을 차지하며 광주 유혈 진압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이희성은 1979년 10·26 사태 이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돼 5·18 당시 공식 지휘 체계의 정점에 있었다. 이씨가 공식 군 지휘 계통의 최상위 의사결정권자였던 만큼, 별도 지휘 체계가 작동했는지 여부 등 발포의 구체적 경위를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황영시는 당시 군 장병 중 일부가 5·18 항쟁 기간 중 '강경 진압'을 지시 또는 주도했다고 증언해 의혹을 사고 있다. 공식 지휘 계통에서 2인자였고, 5공화국 수립 전후 하나회 출신이 아닌 유일한 육군참모차장일 정도로 신군부와 가까웠던 점 등으로 미뤄 황영시의 증언이 절실하다고 5·18 조사위는 밝혔다.

정호용은 전씨·노씨의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공수부대 중심의 강경 진압을 지휘·주도했다. 5·18 항쟁 직후 광주와 서울을 수차례 오가며 강경 진압을 진두 지휘한 사실이 군 기록 등을 통해 증명됐다. 특히 집단 발포가 이뤄진 1980년 5월21일 헬기를 타고 내려왔으며, 5월27일 전남도청 최후 진압 작전 시 필요한 군수품 등을 현지 공수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 신군부의 수뇌였던 전씨·노씨와 함께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 넘겨졌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같은 해 12월 '국민대통합'을 이유로 특별 사면됐다.

현재 5·18조사위는 이희성·황영시에 대한 방문 대면 조사만 이뤄졌다. 정호용은 '5·18 관련 책임을 벗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서의남 505보안부대 대공과장, 김충립 특전사령부 보안반장을 비롯한 당시 보안사·특전사 소속 장교·부사관의 양심 고백이 진실 규명의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5·18조사위는 전씨 사망 직후 입장문을 내고 "전씨 사망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엄정한 조사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며 "신군부 핵심 인물들은 더 늦기 전에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