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총장이 칸 라이언즈(Cannes Lions) 무대에 선 이유는?

CR은 씨앗-창의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씨앗이다

반기문 총장과 6인의 광고 홀딩컴퍼니 회장
반기문 총장과 6인의 광고 홀딩컴퍼니 회장

1. 2016년 6월 프랑스 남쪽 아름답고 세련된 고급 휴양지 칸에 당시 반기문 UN사무총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라이빗 비치를 소유하고 있는 릿츠 칼튼과 마르티네즈를 비롯 수많은 고급 호텔이 해변을 따라 줄지어선 칸의 6월은 전세계 광고,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모여 칸 라이언즈의 크리에이티브의 축제를 즐기는 한 철이다. 크리에이티브 주스(creative juice)가 철철 흘러나오는 행사에 광고인도 마케터도 엔터테이너는 더더욱 아닌 반기문 총장이 왜 나타나셨을까? 키노트 스피커로 나선 반기문 총장은 본인 주도로 설계한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설명하려고 그 자리에 섰다. 인류와 지구가 맞닥뜨린 문제의 원죄는 인간에게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창의적이고 체계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파하면서, 17가지 목표를 설정한 이유가 거기에 있음을 알렸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피치를 마친 후 반기문 총장은 전세계 광고회사의 6대 홀딩컴퍼니의 회장을 단상으로 불러냈다. WPP,OMNICOM,Publicis,Dentsu,Havas,IP 여섯 개의 홀딩 컴퍼니는 전 세계 모든 내로라 하는 광고회사들이 속해 있는 그룹이다. 그 중 규모면에서 1위인 WPP회장은 그 유명한 마틴 소렐이었다. 이같은 거물들을 불러 놓고 반기문 총장은 지금까지 광고인들이 그들의 창의력을 발휘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왔으니, 그 능력과 경험을 인류가 처한 문제해결에 써달라는 요청을 했고 약속을 받았다. 도원결의의 현장이었다. 그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이었으며, 모인 이유가 지속가능의 솔루션을 만들자는 결의에 있었다는 점은 이 시대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웅변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디카프리오, 키즈 리차드 등 유명인들도 서약에 동참했다.
디카프리오, 키즈 리차드 등 유명인들도 서약에 동참했다.

2. 그로부터 2년 후 2018년 칸 라이언즈에서는 마침내 수상 카테고리에 SDGs를 포함시켰다. 영화제로 치자면, 작품상, 감독상, 남우여우주연상과 같은 카테고리에 지속가능상을 론칭한 것이다. 2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쳐 UN이 설정한 지속가능목표에 대한 솔루션을 심사하고 그 중 우수한 아이디어에 상을 주기로 한 것이다. 세계 톱 3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인 칸 라이언즈, 뉴욕의 ONe Show, 런던의 D&AD 등에서 수상한다는 사실은 족보에 올려야 할 만큼 명예로운 일이다. 20여개가 되는 카테고리에서 그랑프리, 금,은,동상을 수상하기 위해 전세계 크리에이터들은 유레카가 터질 때까지 완전 올인 한다.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진정성과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빛나는 아이디어의 값어치는 몇몇 예술가들이 하나의 표현 방식을 고안해서 같은 패턴을 수십년 동안 만들고 설치하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다. 또는 3~4년에 한 편씩 발표되는 영화와도 비교될 수 없다. 새로운 문제점에 부딪힐 때 마다 적시에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활용이나 리바이벌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디어 발상에서 실행까지의 순발력은 비교를 허락 않는다. 그 자부심이 전세계 광고 크리에이터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그렇기에 수상작에는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가 쏟아지고 전세계에 벤치마킹 사례로 전파되며, 수상자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전세계의 조명을 받았던 것 이상의 명성을 갖게 된다. 광고가 상업적 영역이기에 언론이 다루지 않아 대중이 모를 뿐이다. 광고가 상업적 영역에만 머물던 시대를 훨씬 벗어났는데도 말이다. 반기문 총장이 제품 판매를 올려 달라고 칸에 모습을 드러낸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권에 찍힌 팔라우 서약 스탬프
여권에 찍힌 팔라우 서약 스탬프

3. 칸의 SDGs 부문 첫번째 그랑

프리를 차지한 프로젝트는 팔라우 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팔라우 서약(Palau Pledge)'이었다. 북위 7도 21분 38초, 동경 134도 28분 45초, 남태평양의 서부에 팔라우라는 섬이 있다. 201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며 더욱 알려졌고, 우리나라엔 신혼여행지로 주목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알고 보면 팔라우는 갖가지 바다생물이 살아 숨쉬는 청정지역으로, 다이버들의 성지로도 추앙받는다. 그런데 팔라우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점점 가라 앉고 있는 섬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환경파괴로 인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움에 처한 것이다. 해수면 상승뿐 아니라 여러 가지 악재가 팔라우를 위협하고 있다. 가까운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플라스틱 등 해양 쓰레기가 조류를 타고 밀려와 팔라우를 오염시키고 있다. 또한 한 해 팔라우를 찾는 관광객 수가 팔라우 인구의 8배가넘는데, 이들이 버리고 가는 엄청난 쓰레기도 큰 골칫거리다. 팔라우는 국토 면적이 크지 않은 섬나라이기에 정부 입장에서 폐기물 처리는 가장 곤혹스러운 일 중의 하나다. 이를 방치한다면 섬 전체가 쓰레기 처리장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가 재정의 60퍼센트를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입국하는 관광객 수를 통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유일한 젤리피시 천국으로 알려졌던 팔라우였지만, 엘니뇨의 영향과 관광객의 무분별한 환경 훼손으로 젤리피시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 아름답던 산호도 백화현상으로 하얗게 변했다. 산호가 병들면 바다 생태계가 바로 병들게 되고, 이는 육지로 연결되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한 마디로 자연을 벗삼아, 상품삼아 살아왔던 나라가 총체적 재앙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이에 팔라우 정부 및 환경단체에서는 글로벌 광고회사 퍼블리시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팔라우 섬의 환경보호에 대한 관광객의 인식을 높이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섬주민 수의 8배인 관광객의 마음가짐이 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솔루션의 핵심은 입국할 때 여권에 찍어주는 스탬프다. 스탬프엔 자연을 훼손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관광객들은 스탬프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은 후 서명란에 서명해야 팔라우에 발을 디딜 수 있다. 외국에 도착했을 때 관광객이 처음 마주하는 곳이 이미그레이션이다. 그곳에서 팔라우에 대한 첫 인상으로 환경보호라는 콘셉트를 강렬하게 각인하는 전략이다. '팔라우 서약' 스탬프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가성비 높은 환경보호 솔루션이다.

팔라우 환경관계자들과의 미팅
팔라우 환경관계자들과의 미팅

4. 우연의 일치였을까. 나는 현지에서 팔라우 서약 프로젝트가 막 시작됐을 무렵인 2018년 5월과 6월에 걸쳐 팔라우를 두 번 방문했다. 기후난민(Weather Refugees)의 콘셉트를 하나투어문화재단에 제안했고, 제안이 받아들여져 남태평양의 섬나라가 직면한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찾고자 떠난 여정이었다. 정치적 난민 뿐 아니라 기후변화로 나라를 잃을 처지에 놓인 난민도 존재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첫번째는 답사였고 두번째는 해양학자, 저널리스트, 인문학 교수, 아티스트, 건축가, 포토그라퍼 등으로 꾸려진 탐사단이었다. 입국할 당시 여권에 찍힌 스탬프의 글귀를 읽으면서 참 대단한 아이디어라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해당 기관장들과 미팅도 가졌고, 해양의 현장 경험이 많은 어부들과 인터뷰도 진행했다. 무엇보다 폐기물 처리장을 방문했던 것이 팔라우의 환경보호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귀국하기 하루 전 누군가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팔라우 기관장으로 부터 받았다. 만나 보니 그들이 바로 팔라우 서약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팔라우 서약에 대한 홍보영상을 만들었는데,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법에 대한 의견을 얻고 싶다 했다. 우리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팔라우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기에 뭔가 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팔라우로 취항하는 비행기 좌석의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비행기 안에서 한 번 환경 백신을 맞고, 입국하면서 두번 째 백신을 맞는 셈이 되는 것이니까 효과가 배가될 것이라는 의견을 주었다. 그 중 선임이었던 백인 여성이 좋은 의견이라며 고맙다는 말을 전하던 중 문자를 확인하면서 "우리 프로젝트가 상을 좀 받았다는 데요…?" 하는 것이었다. 무슨 상인지 몰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자리를 떴다.

귀국 후 며칠이 지나 내 여권에 찍힌 스탬프가 칸 라이언즈에 처음 개설된 SDGs카테고리의 그랑프리를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이 받았다던 상이 바로 칸 라이언즈의 그랑프리였다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맞아 떨어지는 필연과 같은 팔라우와의 운명을 느꼈다. 그 많은 지구촌 문제 중 남태평양 섬의 환경 문제를 다뤄보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 나였고, 그 많은 섬 중 하필 우리가 찾아간 곳이 팔라우였고, 비슷한 시기에 같은 생각을 가진 누군가 솔루션을 찾고자 선택했던 섬 역시 팔라우였던 것이다. 이 지구상의 누군가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산업화 이후 지구의 온도는 계속 상승해왔고, 당시와 비교해 지구 온도가 2° 상승한다면 지구는 멸망할 것이란 관측이다. 현재 1.2°가 상승한 상태인데, 전세계는 1.5°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는 목표 아래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태다. 지켜질 것이다. 아름다운 섬 팔라우가 물에 잠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