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흑산도 기점으로 마한문화권을 아우르는 '무안만 물골'

무안만(務安灣)
무안(務安)은 '물안'에서 온 말
'물의 안쪽'에 있는 땅이라는 뜻
삼면이 바다로 에두른 땅 의미
우리나라를 축소해놓은 듯한 곳
고지도를 보면 명료하게 보여
신안(新安) '새로 생긴 무안'

규장각 소장 해동지도.
규장각 소장 해동지도.

사전에서는 항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도록 강가나 바닷가에 부두 따위를 설비한 곳'. 포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언제부터 이런 용어들이 사용된 것일까? 조선시대까지 '부두(埠頭)'를 항구(港口)로 표기한 예는 거의 없다. 고종 이후에야 무안항(務安港) 등의 용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지금의 목포항이다. 1897년 10월 개항한 이후 무안항이었다가 1910년 목포부로 개칭하면서 목포항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배를 대어 사람과 짐이 뭍으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라는 의미의 부두(埠頭)는 어찌 호명하였을까? 포(浦) 혹은 포구(浦口)이다. 우리말로 하면 '나루' 정도 될 터인데, 지금은 강이나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장소로 축소되었다. 항구의 본래 의미는 무엇일까? 항(港)의 본음은 강(江)이다. 물 수(水)에 항(巷)을 붙여 만든 글자다. 읍(邑)은 고을을 말하는데, 항(巷)은 고을을 통하여 몇 개로 나뉜 골목을 말한다. 고을의 골목처럼 나뉜 수로(水路))라는 뜻이다. 안항, 내항, 노루목 등의 용례에서 살필 수 있다. 물골 혹은 물길의 의미로 쓰였다. 강(姜) 자체가 넓고 길게 흐르는 큰 물줄기라는 뜻이다. 남도에서 상용해온 바다 물골 즉 '개옹'에서 그 출처를 따져 물을 수 있다. 항(港)은 '물이 흘러들어오거나 나가는 어귀'라는 뜻이다. '물목'이다. 해남과 진도를 가르는 '울둘목'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루 혹은 포구를 열다'는 뜻의 개항(開港)도 부두(Port 혹은 harbor)를 연다는 의미보다는 배가 들어오는 물길 곧 물목을 열었다는 뜻이 강하다. 닻을 내린다는 정박(碇泊, anchorage)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이해된다. 목포항의 개항을 부두를 열었다는 의미를 넘어 남도 물길을 열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안만(務安灣)에서 바라보는 한해륙 5대물골론

무안군의 무안(務安)은 '물안'에서 온 말이다. 고지도를 볼수록 이 점 명료해진다. '물의 안쪽'에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물아래'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의 안쪽이든 물의 아래든 삼면이 바다로 에두른 땅이라 의미는 훼손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축소해놓은 듯한 곳이다. 지금의 지도를 놓고 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물아래라면 무안반도의 위쪽이 바다라는 뜻 아닌가? 그렇다. 지금의 영암 남포까지 혹은 나주의 영산포까지 바닷물이 들락거려 현격한 조수간만의 차가 있던 곳이다. 변남주 교수가 '동국여지승람'(1481) 산천조를 인용해놓은 바에 의하면 썰물에는 나주지역의 금강진(금천, 나주목포 혹은 남포), 무안지역의 대굴포, 덕보포, 두령량을 지나야 지금의 목포인 고하도 앞바다로 흘러내리고 들물에는 역으로 금강진 위쪽으로 바닷물이 거슬러 오른다. 박관서 시인이 '무안의 길'(무안문화원 간)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한반도 동해, 서해, 남해의 지형적 특색을 무안반도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신안(新安)은 '새로 생긴 무안'이라는 뜻으로 1969년에야 신설되었다. 무안반도를 비롯한 서남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에 우리나라 섬의 2/3가 포진되어 있다. 나는 이곳을 에둘러 남도라고 호명해왔다. 지리적 특징보다는 생태적이고 문화적인 특색에 집중해왔다. 지난 칼럼에서 해경표를 제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남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유효할 것인가를 궁구했다. 그중 하나가 무안만이다. 물길 끝 광주, 중간의 나주, 나들목 목포도 있는데 왜 무안만을 택했나. '물안만' 혹은 '물아래만'이기 때문이다. 동으로는 광주 신창동과 나주까지 바다의 영역으로 포섭하고 서로는 고창, 변산으로 오르는 바다를 아우르는 컨셉이다. '남도만(南道灣)'도 나쁘지 않을 듯한데, 관심 있는 분들의 비판이나 고언 바란다.

지난번 밝힌 대강은 이렇다. 내가 오랫동안 제안해온 갱번론(gengbone theory)의 하나다. 해항도시니 강항도시니 하는 사람 중심의 지정학을 넘어선 생태학적 포지셔닝이기도 하다. 신경준(1712~1781)이 썼던 <산수고(山水攷)>와 <강계고(疆界考)> 등을 토대로 우리 국토를 산맥 중심으로 해석한, <산경표(山經表)>를 뒤집어 읽은 것이다. 남도인들의 인식 범주, 바다를 강으로 생각하고 강을 바다로 생각하는 대대적(對待的) 사고의 형상화다. 출처는 강변(江邊, riverside)이되 조하대의 보이지 않은 물길까지 포괄하는 갱번론이다. 강항(江港)이나 해항(海港)보다 강포(江浦)라는 용어를 채용하는 것은 개(갱번)의 어귀라는 생태적 입지 때문이다. 한해륙을 5대 물골로 설정하고(4대물골론을 수정하였다), 5대 작은물골로 구성했다. 첫째 무안만(務安灣)이다. 삼면의 바다, 우리나라 삼대 해신사(海神祀)였던 영암 남포로, 광주와 담양, 화순으로 오르는 물골과 법성포 고창으로 오르는 물골을 포괄하는 만(灣)이다. 기점에는 흑산도가 있고 정점에는 익산에서 경기도까지 이르는 마한 문화권이 있다. 둘째는 금강만이다. 부여, 공주, 논산으로 오르는 금강, 백강 물골과 김제, 전주물골을 포괄한다. 기점에는 위도와 고군산군도가 있고 정점에는 부여, 공주 백제 등이 있다. 셋째는 경기만이다. 예성강, 임진강으로 북한강, 남한강으로 흐르는 한해륙 가장 중요한 물골이다. 기점에는 덕적군도가 있고 정점에는 고구려, 신라를 포괄하는 개성 고려, 한양 조선 등이 있다. 넷째는 발해만이다. 범주가 너무 넓어 황하만(베이징, 톈진), 요하만(다렌, 칭다오), 압록만(단둥, 신의주), 남포만(대동강, 평양), 해삼위만(블라디보스토크)으로 다시 나눈다. 다섯째는 김해만이다. 가야의 네트워크다. 이외 작은물골(small bay)로 강진만, 여자만, 울산만, 발해만의 중만(middle bay)으로 설정했던 남포만, 압록만을 포함시킨다. 작은물골은 다시 작은 강과 하천으로 올라 백두산 천지연과 삼지연에 이른다. 거꾸로 보면 보인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불에서 물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지난 1~2세기 동안 현자들이 이구동성 외쳐왔던 후천개벽, 새로운 시대의 기점을 마련하는 방안 말이다. 산경표는 그 시작에 백두를 두었고 나는 그 시작에 적도(赤道)를 두었다.

남도인문학팁

산경표 넘어 해경표를 구상하는 까닭

내 기본적인 시각은 여백과 행간을 좇는 것이다. 남도의 풍류와 서화와 예술과 예컨대 가사문학 따위의 아정한 것에 대하여 이른바 속되고 천해서 망실된 풍속을 주목한다. 그 이면을 가져와 의미를 부여한다. 쓰여진 글보다는 쓰여지지 않은 행간을 찾고, 그려진 그림보다는 그려지지 않은 여백을 찾는다. 정사보다는 비사를 얘기하고, 영웅보다는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가신 남도의 민중들을 얘기하며,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것들, 예컨대 구비(口碑)와 신화와 노래 따위를 즐겨 말한다. 이것이 그간의 정사(正史)에서 찾을 수 없었던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얘기, 내 이웃과 선·후대들의 올곧은 이야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속사(俗史)라고나 할까. 종된 것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꾸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가진자와 못가진자를 대척적 관점에서 구분 지어 투쟁하자는 뜻이 아니다. 내 관심은 언제나 주역에서 말하는 대칭적 사고에 기반해 있다. 여성과 장애인과 소수자들의 인권이 점점 높아지고 세상이 민주화되어가며, 당연하다 싶었던 계급과 계층 나눔의 풍속이 사실은 몰이해적 구분법에 의한 것이었다는 깨달음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정한 것과 속된 것이 좋고 나쁘거나 중하고 천한 것이 아니라 대칭으로서 동등한 것이다. 저간의 내륙중심 산맥 중심의 사고에서 바다중심 물골 중심의 사고로 바꾸어보자는 권유를 이론화한 것이다. 시대는 모름지기 그렇게 전진 혹은 진보해왔다. 나는 이것을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