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노동과 코로나의 고단함 위로해주는 '길쌈노래 ♪'

화순 내평마을
70년대 카시미론 등 화학솜 이불
나오며 한 순간에 사라진 목화솜
내평마을 아낙네들이 기억해 낸
씨 뿌려 김 매고 솜 따고 길쌈…
물레 돌려 솜 타고 베 짜는 과정
‘길쌈노래’로 제작해 연습·보존

내평마을 입구에 세워진 마을 표지석. 마을의 지명 유래까지 개겨져 있다. 이돈삼
내평마을 입구에 세워진 마을 표지석. 마을의 지명 유래까지 개겨져 있다. 이돈삼

어렸을 때, 누비이불을 덮고 살았다. 누비이불은 푹신했다. 추운 겨울밤도 거뜬했다. 이불이 무거운 게 흠이었지만, 마냥 좋았다.

누비이불은 형제들의 도화지였다. 돌아가면서 지도를 그렸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지도까지 곧잘 그렸다. 하지만 칭찬을 받지 못했다.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 동냥을 나가야 했다.

그 시절, 목화가 지천이었다. 집집마다 목화를 심었다. 딸자식이 많은 집은 더 심었다. 당시 목화솜을 넣은 이불은 첫손가락에 꼽는 혼수품이었다.

목화는 동네 아이들에게 군것질거리였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다래는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다래 맛은 떨떠름하면서도 달큼했다.

따사로운 햇살에 쩍 벌어진 하얀 솜꽃도 아름다웠다. 목화를 주제로 한 대중가요가 인기를 얻은 것도 그때였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이라네/ 밤하늘에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하던 곳/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하사와 병장'이 부른 노래 '목화밭'의 앞부분이다.

내평마을 골목과 담장.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이돈삼
내평마을 골목과 담장.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이돈삼
내평마을 골목과 담장.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이돈삼
내평마을 골목과 담장.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이돈삼

목화밭은 70년대 중·후반부터 사라져갔다. 목화솜 대신 화학솜을 넣은 이불이 나왔다. 화학솜을 넣은 '카시미론' 이불은 가벼웠다. 몸을 감싸주는 맛은 덜해도, 보온효과는 좋았다.

80년대 이후 목화밭이 완전히 사라졌다. 장롱을 지키고 있던 목화솜 이불도 버려졌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목화가 잊혀졌다. 책에서나 간간이 사진으로 볼 뿐이었다.

추억 속의 목화를 만났다. 대문 앞에 목화 화분이 하나씩 놓여있다. 마을회관 앞에도 목화가 심어졌다. 미백색과 연분홍색의 꽃이 피어있다. 다래도 달려 있다. 불그스레 물든 잎 사이로 목화솜도 벙글어졌다.

다래 하나를 따서 입안에 넣었다. 옛날 그 맛은 아니지만, 기억 저편에 있던 옛 추억을 새록새록 끄집어내 준다.

화순읍 내평마을이다. 내평리는 내촌·평림·사촌마을로 이뤄져 있다. 마을 안쪽에 있다고 '안골' '내촌(內村)'이다. 들판에 있는 마을은 '들모실' '평림(坪林)'이다. 냇가 옆은 '냇가데미' '사촌(沙村)'이다. 내촌과 평림의 첫 글자를 따서 '내평'이 됐다.

내평마을도 목화를 많이 심었다. 목화솜에서 실을 뽑고, 베를 짜는 길쌈이 아낙네들의 일상이었다. 한데 모여서 옷감을 같이 짜는 아낙네들 모임도 만들어졌다. '길쌈두레'다.

내평마을 골목에서 만난 대봉 감. 가을이 무르익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돈삼
내평마을 골목에서 만난 대봉 감. 가을이 무르익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돈삼
목화 다래. 시절이 다른 탓인지,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이 아니다. 이돈삼
목화 다래. 시절이 다른 탓인지,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이 아니다. 이돈삼

내평마을 골목에서 만난 대봉 감. 가을이 무르익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돈삼
내평마을 골목에서 만난 대봉 감. 가을이 무르익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돈삼

길쌈은 힘든 일이었다. 노동의 고단함과 졸음을 달래는 길쌈노래가 만들어졌다. 단조로운 동작을 흥겹게 풀어내는 몸짓이다.

노랫말에는 아낙네들의 희로애락이 담겼다. 노동과 휴식이 버무려지면서 생산성이 높아졌다. 노래는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다시 딸에게로 전해졌다.

목화와 함께 사라지고 잊혀졌던 길쌈노래가 다시 태어났다. 내평마을 아낙네들이 노랫말을 기억해 냈다. 목화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목화솜을 따고, 길쌈을 하는 과정을 시나리오로 썼다.

마을 아낙네들이 한데 모여 물레를 돌리고, 솜을 타고, 베를 짜고, 다듬이질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한편의 작품이 완성됐다. '내평마을 길쌈노래'다. 주민들은 틈나는 대로 모여 연습을 했다. 농번기를 피해, 그것도 저녁시간에 만났다. 길쌈노래 보존회도 만들었다.

'물레야 자세야 어리뱅뱅 돌아라/ 어리렁 스리렁 잘도나 돈다/ 바람 솔솔 부는 날 구름 둥실 뜨는 날/ 월궁에서 놀던 선녀 옥황님께 죄를 짓고// 물레야 자세야 어리뱅뱅 돌아라/ 어리렁 스리렁 잘도나 돈다/ 인간으로 귀양와서 좌우산천 둘러보니/ 한도 많고 꿈도 많은 인간세계 여기로다….' 내평마을 길쌈노래의 '물레 돌리기' 부분이다.

내평마을 골목과 담장.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이돈삼
내평마을 골목과 담장.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이돈삼
내평마을 길쌈노래. 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시연하는 모습이다. 이돈삼
내평마을 길쌈노래. 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시연하는 모습이다. 이돈삼
내평마을 길쌈노래. 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시연하는 모습이다. 이돈삼
내평마을 길쌈노래. 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시연하는 모습이다. 이돈삼

완성된 내평마을 길쌈노래가 '나들이'에 나섰다. 1990년 남도문화제였다. 물레노래와 베틀노래, 길쌈 노동을 재현했다. 2008년엔 화순풍류문화큰잔치에서 길쌈노동을 선보였다. 2013년 내평마을 길쌈노래가 화순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내평마을 벽화.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돈삼
내평마을 벽화. 목화와 길쌈을 주제로 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돈삼

2015년 전남민속예술축제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2016년엔 전라남도를 대표해 제57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017년 제15차 세계유산도시기구 세계총회의 초청을 받아 공연도 했다.

내평마을 길쌈노래의 예술성과 역사성이 인정받으면서 주민들의 삶도 달라졌다. 주민들이 많이 웃고, 표정도 더 밝아졌다. 마을을 위한 일에도 너나 할 것 없이 한마음으로 나섰다. 길쌈노래를 연습하며 보존·전승할 길쌈마루 전시관도 마을에 들어섰다.

화순군도 내평마을 길쌈노래의 문화관광 자원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길쌈노래를 녹음해 디지털 파일로 만들었다. 길쌈노래 공연 외에도 길쌈 체험, 목화인형 만들기 등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목화 탕수육과 떡 그리고 방향제, 드라이플라워 등도 선보였다.

마을주민들이 코로나19 이후, 위드 코로나 시대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누렇게 물들어가는 내평마을 앞 들녘. 느티나무를 사이에 두고 왼편이 연양마을, 오른편이 내평마을이다.이돈삼
누렇게 물들어가는 내평마을 앞 들녘. 느티나무를 사이에 두고 왼편이 연양마을, 오른편이 내평마을이다.이돈삼
내평마을 회관. 회관 앞 마당에 목화가 심어져 있다. 이돈삼
내평마을 회관. 회관 앞 마당에 목화가 심어져 있다. 이돈삼
한적한 가을 한낮의 내평마을. 전형적인 농촌 풍경 그대로다. 이돈삼
한적한 가을 한낮의 내평마을. 전형적인 농촌 풍경 그대로다. 이돈삼
한적한 가을 한낮의 내평마을. 전형적인 농촌 풍경 그대로다. 이돈삼
한적한 가을 한낮의 내평마을. 전형적인 농촌 풍경 그대로다. 이돈삼
내평마을 회관. 회관 앞 마당에 목화가 심어져 있다. 이돈삼
내평마을 회관. 회관 앞 마당에 목화가 심어져 있다. 이돈삼
목화솜. 하얗게 벙글어진 솜이 화사하게, 탐스럽게 생겼다. 이돈삼
목화솜. 하얗게 벙글어진 솜이 화사하게, 탐스럽게 생겼다. 이돈삼
목화솜. 하얗게 벙글어진 솜이 화사하게, 탐스럽게 생겼다. 이돈삼
목화솜. 하얗게 벙글어진 솜이 화사하게, 탐스럽게 생겼다. 이돈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