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선의 사진풍경 47> 9.18 만주사변의 진실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우리민족의 얼이 깃들어 있고,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만주지역을 떠돌다가

쉔양(瀋陽)의 북쪽에서 그럴싸한 조형물을 만나게 되었다.

'9,18 만주사변역사관'의 상징물이다.

동북아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의 야욕과 더불어

'양세봉'을 비롯한 조선독립군의 활동도 엿볼 수 있어 꼭 들려봐야 할 곳이었다.

조선을 강탈하고 난 일본군은 대륙 침략에 대한 야욕이 더욱 불타올랐다.

그 시작의 단초가 된 사건이 1931년 9월18일 벌어진 '류타오후(柳條溝) 철도폭파사건'이다.

이것은 만주를 장악하기 위한 치밀한 일본 관동군의 자작극이었으며,

이를 빌미로 장쉐량(張學良)이 이끌고 있던 만주군벌에 대한 일방적 공격으로 이어졌는데 이것이 만주사변의 시작이다.

만만치 않았던 만주군벌의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베이징에 머물면서 급보를 접한 장쉐량이

'저항하지 말라!'는 알 수 없는 반복된 지시를 내려

결국 불과 며칠 만에 만주 전역을 관동군에게 내주고 말았다.

거기에는 국민당을 이끌던 또다른 군벌 장제스(蔣介石)의 정치적 간계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이 고장 광주에 5.18이 있다면, 쉔양에 가면 9.18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그 조짐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도 칼날이 번뜩이는 일본도와 그에 희생된 수많은 두상들, 그리고 조선독립군들의 초상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