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1순위지만...유명무실 노인보호구역

25일 찾은 광주 남구의 한 노인보호구역에는 30km 제한속도를 지키는 차량을 단 한대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중앙선을 침범한 통행도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25일 찾은 광주 남구의 한 노인보호구역에는 30km 제한속도를 지키는 차량을 단 한대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중앙선을 침범한 통행도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노인보호구역이요· 그야말로 아무 도움도 안되는 곳이죠."

일명 민식이법인 특가법 시행 이후로 어린이 보호구역에 대한 관리가 강화됐음에도 여전히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광주경찰청은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안전시설 개선 계획을 보완·추진할 방침이다.

그런데 같은 교통약자로 구분된 노인들의 경우 지정된 보호구역의 관리가 너무 엉망이어서 말만 보호구역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5일 광주시에 따르면 노인복지 시설장이 지자체장에게 보호구역 지정을 신청하면 지자체장이 지방경찰청과 협의해 장애인 보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고, 시설장의 신청이 없더라도 안전상 필요한 경우 지자체장이 직접 지정할 수 있다.

지정대상은 △노인복지법 제31조에 따른 노인복지시설 중 노인주거복지시설·노인의료복지시설 및 노인여가복지시설 △자연공원법 제2조제1호에 따른 자연공원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3호에 따른 도시공원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른 생활체육시설 등이다.

이에 따라 현재 광주시 관내에 지정된 노인보호구역은 동구 7곳, 서구 13곳, 남구 10곳, 북구 12곳, 광산구 12곳 등 총 54곳이다.

이날 오전 11시께 찾은 광주 남구 빛고을노인건강타운 앞 도로.

코로나19로 노인들의 발길이 뜸해지긴 했지만, 이곳은 평소라면 하루 3000여 명이 넘는 노인들이 왕래하는 곳이다.지난 2009년 교통약자인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어린이 보호구역과 마찬가지로 통과 속도는 30km로 제한돼 있었다.

또 통행하는 운전자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방지턱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였다. 이날 확인한 결과 해당 도로를 지나는 운전자로부터 제한속도를 지켜 통행하는 모습은 전무했다. 이들은 방지턱 앞에서 잠깐 속력을 낮출 뿐 다시금 속도를 올려 통행했으며, 손님을 태우기 위해 버스 등이 정차하면 경적을 울리거나 중앙선을 넘어 추월해 가기도 했다.

이곳을 지나는 김순희(78·여)씨는 "노인보호구역이 뭔 소용입니까. 우리 노인들이 도로에 있어도 차들은 그냥 비켜 지나치기 바쁘지"라며 "어린이 보호구역은 단속이라도 하던데 이곳은 과속단속 카메라도 없어서 그냥 무방비 상태"라고 말했다.

남구의 또 다른 노인보호구역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곳 역시 노인복지시설이 있는 곳으로 시설장이 광주시에 신청해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됐지만, 복지시설이 공원과 붙어있고 골목길을 통해서만 통행이 가능해 단속카메라 등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보호구역 표시가 무색할 정도로 곳곳에 불법 주정차한 차량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 불법 주정차량들로 인해 도로를 건너는 노인들은 차 사이를 지나다녀야만 해 도로를 달리는 차량과 보행자간의 불안한 눈치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한 노인은 "분명 만들 때는 좋은 취지로 국가 예산을 들여 만들었을 텐데 관리는 뒷짐이다. 관리·단속도 안 할거면서 왜 만든 건지 도통 모르겠다"라며 "누구 하나 크게 다치거나 죽은 뒤에 수습하려 하지말고 노인들을 보호할 생각이라면 제대로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주 이곳을 오지만 운전자들은 우리를 배려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은 과속 카메라도 없어 무법지대나 마찬가지다"라며 "노인보호구역은 말뿐이지 아무도 지키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확인해보니 교통약자인 어린이를 위한 보호구역 내 단속카메라는 광주에 166개가 설치·운용 중이지만 노인보호구역에는 단 1곳도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교통사고 위험은 어린이보다 노인 층이 더 높았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노인 교통사고는 1만2249건으로 어린이 교통사고 3856건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사상자 수도 노인은 1만2396명(743명 사망), 어린이는 3962명(20명 사망)으로 4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노인 교통사고율이 높은데도 왜 보호구역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을까? 답은 간단하다. 예산이 없기 때문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민식이법에 의해 어린이 보호구역은 따로 예산이 나오지만, 노인보호구역은 할당된 예산에서 해결되다 보니 단속카메라 등을 설치하는데 어려움이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또 어린이 보호구역과 겹치는 곳들도 있고 작년과 제 작년에는 노인보호구역 지정을 원하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어린이뿐만 아닌 노인들의 교통안전도 중요하기 때문에 광주시가 자체적으로 검토해 20년도 정비대상 6곳을 선정해 정비할 예정이다"며 "노인들이 도로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대책 등을 마련하고 관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