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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를 다시 읽는다
2017. 08.07. 00:00:00
#1> 영화는 어둠에서 시작한다. 어둠은 터널이었다. 만섭은 어둠을 빠져나와 서울을 달린다. 아마 독립문 고가에서 경복궁 쪽이거나, 한남대교에서 강북 방향인 듯싶다. 첫 장면, 터널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을 닮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나라였다', 그 첫 문장이 떠올랐다. 왜 터널인가. 그것은 어둠에서 빛으로, 허위에서 진실로 이끄는 대서사의 프롤로그 아닐까.



#2> 독일 기자 힌츠페터는 서울에서 한 기자를 만난다. 을지로 4가 국도극장 옆 다방이었다. 기자는 신문을 건넨다. 당시 광주에서 발행하던 '전남일보'였는데, 1면이 텅 비어 있다. 계엄당국의 사전 검열로 삭제됐다. 물론 당시 영화처럼 삭제된 지면이 발행되지는 않았다. 사전 검열에 의해 이리 짤리고, 저리 짤려 누더기가 된 채로 지면은 채워졌다. 기자들은 날마다 군인들에게 발행 전 신문을 들고가 검열을 받아야 했다.

그 때 검열을 받으러 갔던 전남일보 기자가 4년차 나의갑(본보 편집국장 역임)씨였다. 계엄군들은 고약했다. 기사를 난도질한 것도 모자라, 기자들을 모욕했다. 정문에서 검열관 앞까지 오리걸음을 시켰다. 그들은 취재수첩에 그날을 낱낱히 기록했다.

영화는 왜 검열 신문을 페터에게 보여줬을까. 5ㆍ18이 폭도, 사태, 북한군 소행으로 매도되는 '터널의 어둠'은 바로 언론의 죽임, 검열에서 초래되었다. 영화는 5월의 왜곡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증거한다. 그리고서 페터에서 명령한다. 당신은 진실을 기록하라고.



#3> 만섭은 가로 누워 눈물을 흘린다. 페터는 묵묵히 듣는다. 어린 딸을 지켜야 하는 그는 이른 새벽 '손님'을 두고 떠난다. 초파일 연등이 걸린 국도를 따라 순천으로 길을 잡는다. 만섭은 순천터미널 국밥집에서 국수 한 그릇을 후다닥 감춘다. 주인은 시장했느냐며 주먹밥 한 덩이를 건네는데, 광주에서 받았던 그것이다.

광주를 두고 얘기가 섞인다. 광주에 군인들이 쳐들어와 사람들을 다 죽인다는 식당 아줌마, 아니다 서울서 깡패와 빨갱이 대학생들이 몰려와 데모를 한다는 남자, 되레 데모대들에게 군인들이 죽고 다쳤다고 맞장구치는 또 다른 남자. 그들에게 오직 진실은 뉴스뿐이다. "뉴스에 나왔당께"

실존하는 진실과 부유하는 거짓의 충돌, 만섭은 분노한다. 거대한 거짓의 굴레가 광주를 또 죽이는게 아닌가. 혜은이 노래를 흥얼대던 만섭은 핸들을 격하게 꺾는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수동의 방관자가 거대한 역사와 만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과학적 이념이 아니었다. 진실의 증거를 지키려는 상식이었다. 위대한 유턴-.



#4> 만섭이 페터를 다시 만난 건 병원이었다. 그는 넋을 잃었다. 대학생 재식은 피곤죽 주검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늘 말했다. "왜 군인들이 우리들한테 그런다요?" 또 물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80년 5월21일 오후 1시께 시민들은 비무장이었다. 그들은 '공수부대 물러가라'고 했다. 돌멩이를 던지고, 버스를 몰아 저지선을 돌파하려했다. 그 때 수 백발 M16 총탄이 쏟아졌다. 수 십 명이 금남로에 그대로 꼬꾸라졌다. 18, 19일에는 잡히는 대로 짓이겼다. 군홧발로 짓밟고 걷어차고,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첫 희생자는 말 못하는 농아였다. 그는 살려달라는 말 한마디 못했다. 재식도 그렇게 죽었다.

영화는 재식의 죽음을 통해 5ㆍ18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폭력, 학살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었다. 광주는 그저'살고자' 일어섰다.



#5> 페터는 필름을 숨겨 광주를 탈출한다. 광주 기사들, 재식의 소망은 "제발 밖에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샛길을 돌고 돌았다. 아뿔싸, 또 검문이다. 피할 방법도 없다. 정면 돌파다. 차가운 박 중사가 피터와 만섭을 내리라한다. 트렁크를 연다. 외국인 손님 기념품이라고 둘러댄다. 박 중사는 뭔가를 더 들춘다. 아~, 서울 택시 번호판이다. 근데 그냥 트렁크를 닫으란다. 기자도 아니고, 서울택시도 아니란다. 보내란다. 군 통신망이 터진다. 만섭은 바리게이트를 들이밀고 질주한다. 박 중사는 0310 번호판을 오래 응시한다.

왜 그냥 보냈을까. 군인들조차 학살에 공분했음이 아닐까. 그리고 진실을 알리라고….



영화의 엔딩은 광화문이다. 2003년 만섭은 눈 내리는 날, 광화문으로 향한다. 촛불혁명의 성지, 광화문 아닌가. 어둠의 터널을 헤쳐 온 5월은 광화문에서 승리의 역사로 각인된다.

하지만, 힌츠페터가 세상에 알린 건 고작 항쟁 3일간 뿐이다. 광주의 10일은 아직도 긴 어둠에 갇혀 있다. 거짓과 왜곡도 여전하다. 죽은 자는 있으나, 죽인 자는 모른다.

재식은 다시 진실을 묻는다. 뭣 땜시 우리를 그렇게 죽였당가!


이건상

기획취재본부장

gslee@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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