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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결코 용서할 수 없다
2017. 04.17. 00:00:00
전두환 씨가 30년 만에 '광주사태'를 회고했다. 160쪽 분량에 내용도 자극적이다.(1권 제4장 5.18신화의 자리를 차지한 역사) 전씨의 5ㆍ18 프레임은 김대중-과격시위-북한 특수군-교전 자위권으로 짜여 있다. 즉 광주사태는 김대중이 정권을 잡기 위해 민중봉기를 사전에 기획, 광주에서 과격 시위를 주도했고 유언비어와 과격 시위가 사태를 더욱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 특수부대가 침투해 무기를 탈취, 국군과 교전이 벌어졌고, 계엄군은 정당 방위적 자위권을 발동(발포)했다는 것. 이 프레임은 '북한군 광수' 운운하는 극우 인사 주장과 동일하다. 그렇다고 전씨 회고록을 모른 체, 무시할 수도 없다. 역사의 반동이기 때문이다. 전씨 주장을 짚어 본다.

첫째, 전남대 등 광주에서 실제로 과격시위가 전개됐는가.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80년 5월18일 (전남대)학교 출입을 제지당한 학생들이 한순간 경비병들을 향해 돌을 던지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돌을 미리 가방에 담아왔다. 지휘관은 투석 공격에 대응하지 말고 부동자세로 서 있으라고 했다 '고 적었다. 그는 시위대의 폭력성을 거론하며 '21일 오전 8시 시위대들은 각자 낫, 도끼, 칼 등을 들고 있었으며, 일부는 낫으로 (공수부대) 방석모를 툭 툭 치며 위협했다'고 했다.

그날 전남대 상황은 달랐다. 오전 10시30분 학생 150여명이 교문에서 7공수 33대대와 실랑이를 벌이다 투석전이 벌어졌다. 그 때 공수부대는 2개 중대를 투입, 학생들을 곤봉으로 타격하며 체포 작전에 나섰다. 2군계엄사령부 상황일지에는 '완전 진압 해산. 치안처에서 경찰에 학생 전원 연행토록 지시'라고 돼 있다. 31사단 상황일지에도 '공수조치: 즉각 출동 교문봉쇄 및 진압 임무 수행, 분산 해체'라고 적혀 있다.

전두환 말대로 공수부대원들은 학생들이 던지는 돌을 맞으며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후 학생들은 금남로로 진출했고, 7공수 33,35대대는 무자비하게 학생과 시민들을 폭행하고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수많은 사진이 '피의 일요일'을 증언하고 있다. 그날 첫 희생자는 말 못하는 농아 김경철씨 였다. 평화시위를 과격진압으로 대응했다.

둘째, 북한 특수부대가 정말 광주에서 활개 쳤는가. 전씨는 5월21일 20사단 지휘부 차량 피습, 아세아 자동차 장갑차 및 차량 탈취, 전남 38곳 무기고 피탈, 교도소 피습을 예로 들었다. 그는 지휘부 차량을 공격한 이들이 아세아자동차에 이어 무기고를 연쇄적으로 털었으며, 모두 600명이라 했다. 그는 회고록에 '이처럼 전개된 일련의 상황들이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라는 의심을 낳고 있는 것이다'(406쪽) 고 밝혔다.

당시 보안사령관에 대통령을 역임한 전씨가 북한군이 침투했다니 독자들이 헷갈릴 수도 있을 터다. 근데, 전씨는 신동아 2016년 6월호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두환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 "어디로 왔는데?"

정 "5ㆍ18 때 광주로. 그래서 그 북한군들하고 광주 사람들하고 같이 봉기해서 잡았다는 거지"

전 "오…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전 전 대통령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동아 인터뷰 기사)

북한군을 정면으로 부인한 이 인터뷰가 나가자 지만원은 '5ㆍ18세력에게 항복하는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당신은 보수우파 대한민국 국민으로부터 참 나쁜 인간 전두환으로 낙인찍힐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2016.11.9 블로그) 그래서였을까. 전씨는 11개월 만에 광주에서 북한군이 활개 쳤다고 번복했다. 참 나쁜 인간 전두환-.

셋째,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정말 5ㆍ18을 몰랐는가. 그는 회고록에서 '나는 광주에서 진행되는 작전상황과 관련해 조언이나 건의를 할 수 없었다. 광주가 수복되기까지 정보 및 수사 기능은 완전 마비 상태였다'고 했다.

한용원(육사19기ㆍ전 보안사 정보처장)씨는 2006년 3월13일 국방부 과거사위원회에서 보안사의 활동을 털어놓았다. 그는 '보안사 홍성률 대령이 17명의 대원들과 함께 광주에 갔고, 공작적 차원의 활동을 전개했다'고 증언했다. 또 '당시 광주 505보안부대장인 이재우가 전두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하고 와병중이라 최예섭, 최경조가 파견됐다'고 했다. 계엄사 문서에는 '시내에 은밀히 폭도를 가장 침투시켰던 요원과 매수했던 난동분자를 활용해 작전 전개'(1980.5.31)했다고 기록돼 있다.

소준열 전교사사령관은 1996년 12월9일자 전남일보 인터뷰에서 "전씨가 공수부대원 사기 죽이지 말라"는 친서를 보냈다고 폭로했으며, 방송매체에서는 "정호용을 통해 보냈다"고 재차 증언했다. 전씨가 어찌 5월광주를 모를 수 있겠는가.



20년 전인 1997년 4월17일 오늘, 대법원은 전두환 피고인에게 반란수괴,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8개월 후 정치권은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너무 빠른 사면이었다. 박근혜 피의자 옆에 있어야 하는데…. 역사는 결코 전두환을 사면할 수 없다.


이건상 기획취재본부장gslee@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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